태그 : 데라우치마사타케

흰 무지개, 해를 뚫다 07 - 임시외교조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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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1917년 4월 20일, 대망의 총선거 결과가 나왔다.

정우회 159명, 헌정회 120명, 국민당 36명, 중립 및 무소속 의원 66명이 되었다. 헌정회는 중의원에서 절대 다수의 권위를 잃었고 정우회는 예전 세력을 만회하여 다수정당이 될 수 있었으나, 중립당 66명의 향배는 능히 대세를 좌우할 수 있는 권위를 갖추는 결과가 되었다.
─ 黑田甲子郞, 『元帥寺內伯爵傳』, 元帥寺內伯爵傳記編纂所, 1920, p.8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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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耿君 | 2009/07/21 22:42 | 아시아에서 길을 잃다 | 트랙백 | 핑백(2) | 덧글(4)

흰 무지개, 해를 뚫다 06 - 내각 불신임안 제출과 의회 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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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라우치 내각이 성립된 후 제38회 제국의회가 1916년 12월 25일에 소집되었다. 이때 등원한 중의원 의원은 347명인데 이 중에서 헌정회 소속 의원만 해도 200명에 가까웠기 때문에 데라우치 내각으로서는 상당히 불리했다. 하지만 귀족원에서는 데라우치 내각에 호의적인 의원들이 많았기 때문에 상황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1917년이 밝아오면서 정당들은 본격적인 입장 표명을 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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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耿君 | 2009/07/20 17:30 | 아시아에서 길을 잃다 | 트랙백 | 핑백(2) | 덧글(4)

데라우치 마사타케의 일화 '백작과 고적', '조선인 본위'

『원수 데라우치 백작전』의 뒷부분에는 '일화영문(逸話零聞)'이라는 권말부록이 있습니다. 이는 데라우치 마사타케의 일화들을 모아놓은 것인데요, 그 중에는 한국통감, 조선총독으로 근무할 당시의 일화나 조선인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 꽤나 인상적인 두 글이 있어서 여기에 옮겨봅니다. 글 속에 보이는 데라우치 총독의 모습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것과는 많이 달라 보이는데, 이것이 위선이었는지 진심에서 나온 행동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본 포스팅은 黑田甲子郞, 『元帥寺內伯爵傳』(元帥寺內伯爵傳記編纂所, 1920)의 '逸話零聞'에서 148-149쪽에 나오는 '伯と古蹟'과 159쪽에 나오는 '鮮人本位'를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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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耿君 | 2009/07/16 10:15 | 반추, 번역의 미 | 트랙백 | 덧글(13)

흰 무지개, 해를 뚫다 05 - 데라우치, 빌리켄으로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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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라우치는 총리가 된 이후 빌리켄 총리, 빌리켄 재상이란 별명을 얻게 되었다. 데라우치의 머리 모양이 뾰족하게 솟은 빌리켄의 머리 모양과 닮았다는 데에서 별명이 유래하였는데, 이 빌리켄이란 말은 비입헌(非立憲, 일본어로 '히릿켄')이란 말과도 엮여서, 헌정의 상도를 무시하고 초연내각을 구성한 데라우치에 대한 비판을 담아 자주 쓰이게 되었다. (빌리켄과 빌리켄 재상에 관해서는 빌리켄 재상 포스팅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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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耿君 | 2009/07/15 13:38 | 아시아에서 길을 잃다 | 트랙백 | 핑백(2) | 덧글(15)

흰 무지개, 해를 뚫다 04 - 요시노 사쿠조의 데라우치 내각 비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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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노 사쿠조의 「데라우치 내각의 출현에 대한 엄정비판」 나머지 뒷부분이다. 앞서서는 일본 헌정의 대세가 정당주의이고, 초연내각 수립은 이에 대한 일시적인 반동이라는 것이 서술되었고, 초연내각이 등장하게 된 원인을 짚어보았다면, 이번에는 초연내각이 왜 헌정의 적이 되는지를 논하면서 국민들에게 정당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촉구하고 있다. 덧붙이자면 요시노 사쿠조는 글 속에서 줄곧 자신의 '역사가'로서의 입장을 강조하고 있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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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耿君 | 2009/07/15 11:15 | 아시아에서 길을 잃다 | 트랙백 | 핑백(2)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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