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속 '고려' 마을 02 - 고마 신사 가는 길

지난 편에 이어서

666년, 고구려에서 일본으로 사절단이 도착했다. 그 중에는 고구려의 왕자라는 약광(若光)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고구려는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668년에 멸망하였고, 약광을 비롯한 고구려의 귀족들과 유민들은 일본으로 건너오게 되었다. 고려 출신인 그는 고마[高麗]라는 씨를 갖게 되었고, 다이호[大寶] 3년(703)에는 고니키시[王] 성을 하사받았다.

일본 속 '고려' 마을 02
- 고마 신사 가는 길

耿君이 삼가 지음


레이키[靈龜] 2년(716), 약광, 즉 고마노 고니키시 잣코[高麗王若光]는 고구려 출신의 백성들 1799명과 함께 무사시 국으로 와서 고려 군의 수장이 되었다. 그는 고구려 유민들과 함께 이 땅을 개척하여 보금자리로 삼았다. 훗날 고마노 고니키시 잣코가 사망하자, 고구려 유민들은 그 덕을 기려 잣코를 고마 묘진[高麗明神]으로 모시고 신사를 세운 것이다. 그 신사가 바로 고마 신사( http://www.komajinja.or.jp )이다. 이제 나는 그 고마 신사로 가려는 길이었다.

고마가와 역 주변은 뭐랄까 좀 황량한 분위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평범한 시골 마을이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역 주변인지라 양품점, 마트 같은 것들이 길가를 따라 늘어서 있었고, 버스가 간간이 다니기는 했다. 고개를 들어 전봇대를 바라보니, 오, 고마 신사는 앞으로 쭉 가면 있다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표지판을 믿고 앞으로 앞으로 걸어갔다.
역에서 멀어질 수록 더욱 농촌스러운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이제 도로변에는 상업 건물도 없고, 시야는 탁 트였다.
걸어가다보니 삼거리가 나왔다. '高麗神社'라고 적힌 이정표가 보인다. 신사 이름 위에 '출세하고 운트인다[出世開運]'는 구절이 흥미로웠는데, 이 문구는 괜히 붙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사정에 대해서는 잠시 후에 설명하도록 하겠다. 오른쪽으로 가라고는 하는데 역시나 간혹 전원 주택 한 두어채가 보이는 한적한 길이 눈앞에 펼쳐진다. 일찍이 고마가와 역에서 고마 신사까지는 꽤 먼 거리를 걸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므로, 그러려니 하고 산책하는 마음, 하이킹 하는 마음으로 가볍게 발걸음을 떼었다.
길을 걷고 있는데, 왼쪽으로 푸른 밭들이 펼쳐졌다. 앗, 이 밭은 차밭같이 생겼는데, 진짜 차는 아니겠지? 뭔지 모르지만 인상적이어서 사진 한 장 찍어두었다.
그렇게 한참을 걷노라니, 이번에는 조그맣고 빨간 이정표 기둥 하나가 나를 맞이해준다. '고마신사, 쇼텐인[聖天院]'으로 가려면 왼쪽으로 가라고 한다.
아까는 그래도 차가 여러 대 지나다니는 큰 길이었는데, 이번에는 완전 동네 골목길 수준의 길로 접어들었다. 주택들은 여러 채 있었지만 인기척이 없었고, 비어있는 논이 휑하기만 하다. 그래도 꿋꿋하게 '이웃집 토토로'의 삽입곡 <산보>를 흥얼거리며 걸어갔다.

あるこう あるこう わたしはげんき         걸어가자 걸어가자 나는야 건강해
あるくのだいすき どんどんゆこう            걷는 것은 정말 좋아 착착 나가자
さかみち トンネル くさっぱら               언덕길에 터널에 초원을 지나
いっぽんばしに でこぼこ じゃりみち      외나무 다리 울퉁불퉁 자갈길로
くものす くぐって くだりみち               거미줄을 기어나와 내리막길로

노래가 참 잘 어울리는 그런 곳이었더랬다.

노래를 흥얼거리며 가다보니 저 멀리 범상치 않은 큰 건물 한 채가 눈에 들어온다. 딱 봐도 한국식으로 생긴 것이, 저 건물은 아마도 고마 신사 옆에 있는 쇼텐인이라는 절의 본당인 것 같다. 그렇다면 고마 신사가 바로 저기라는 이야기구나. 신이 나기 시작했다.
무시무시하달까 익살스럽달까 한 표정의 장승을 표현한 듯한 붉은색 이정표 말뚝이 이번에도 등장해주셨다. 오른쪽으로 가라구요? 알겠습니다.
12월임에도 불구하고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화창한 날씨라, 오래 걸어서 약간 땀이 나고 목이 말랐다. 그런데 정말 예상도 못한 시골 한구석에 음료수 자판기 한 대가 놓여 있었다. 물 한 병을 사서 마시면서 걸어가니 저 멀리 고마 신사 제2주차장이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오, 주차장이 있다는 것은 신사가 가까이에 있다는 것.
이 다리를 건너면 고마 신사로 가게 된다. 다리의 이름은 바로 '출세교(出世橋)', 일본어 발음으로는 슛세이바시. 정말 이 다리 건너서 신사 가서 빌면 출세하나요? ㅋㅋㅋ
이 다리가 지나가는 바로 위 사진 속 개천이 바로 고마가와, 즉 고마 강[高麗川]이다. 졸졸 흐르는 개천이 어쩐지 어릴적 시골 할아버지댁에 내려가서 놀던 개울하고 많이 닮아있다. 기분 탓인가 ㅋ

자, 이제 거의 다 왔다. 이렇게 고마가와 역에서 고마 신사 앞까지 오는데 25분 가량이 걸렸다.

耿君 識

다음 편에 계속

by 耿君 | 2009/11/01 16:51 | 일본에 가다 | 트랙백 | 핑백(2)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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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ed at 耿君春秋 : 일본 속 '고려'.. at 2009/11/01 16:52

... 경은 이 정도로 하고 이제 고마 신사를 찾아서 떠나가보기로 했다. (안내지도에도 장승이 보이네.) JR 고마가와 역에서 고마 신사까지는 꽤 먼 거리를 '걸어가야' 했다. 耿君 識다음 편에 계속 ... more

Linked at 耿君春秋 : 일본 속 '고려'.. at 2009/11/25 13:27

... 지난 편에 이어서다리를 건너니 큰 길이 나왔다. 큰 길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조금 더 걸어가니, 길 오른편으로 넓은 자갈밭 주차장이 펼쳐지면서 나무들 사이로 큰 도리 ... more

Commented by rumic71 at 2009/11/01 17:11
옛날 가이드북 보면 가는 동안 아무것도 없어서 미리 마실 것 준비하라고 되어 있던데... 결국 자판기를 설치했군요.
Commented by 耿君 at 2009/11/01 18:08
저도 가이드북에서는 마실 거 준비하라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ㅋ
Commented by 아야소피아 at 2009/11/01 17:13
<속일본기> 같은데 보니까 귀화한 백제왕족 후손에게 "백제왕"의 작위를 내린 걸 봤는데, 약광의 경우 작위는 아니었나보죠?

아, 그리고 王의 일본어 발음 "고니키시"랑 "오-"랑 무슨 차이가 있는거죠?

일본어, 일본사에 무지한 제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질문을 올립니다...(꾸벅)
Commented by 耿君 at 2009/11/01 18:14
백제왕족이 가진 성씨가 '구다라노 고니키시[百濟王]' 씨 입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백제왕' 자체가 '작위'의 개념은 아닙니다. 약광이 '고마노 고니키시'이듯, 백제 왕족의 후손들도 '구다라노 고니키시'라는 성씨를 가진 것입니다. '고니키시'는 백제 등에서 왕을 부르는 명칭 '건길지'에서 온 것으로 추정되는데, 고구려, 백제 등 도래인계 왕족 레벨을 지칭하는 가바네의 명칭입니다.

예전에 구다라노 고니키시 교후쿠[百濟王敬福]라는 인물이 여행기 중에 나왔었는데(http://hyunk02.egloos.com/2163069) 이 사람이 바로 아야소피아 님이 말씀하시는 백제왕족 후손 구다라 씨의 일족입니다.
Commented by 아야소피아 at 2009/11/01 18:21
앗! 제가 염두에 두고 있던 인물이 바로 저 '敬福'이 맞습니다.('~王'을 성씨로 주다니, 참 독특하군요..) 답변 정말 감사드립니다.(꾸벅)

덧. 일본어 발음 복잡해요...ㅠㅠ
Commented by 耿君 at 2009/11/01 22:58
참고로 말씀드리면. 위에 링크 걸어놓은 글 보시면 아시겠지만, 에미시의 부족장들에게는 君, 公(둘다 기미라고 읽음)을 가바네[姓]로 주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Commented by Allenait at 2009/11/01 19:59
전형적인 시골 마을이군요
Commented by 耿君 at 2009/11/01 22:59
시골틱한 풍경이지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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