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도 식후경 10 - 서서 먹는 쓰키미우동

니코미우동을 끓여먹은 이야기에 이어서

2008년 12월 3일 수요일 아침이 밝았다. 이날은 원래 7시 반에 일어나 9시부터 로쿠기엔[六義園]에 가고, 동양문고를 방문하는 일정이 잡혀있던 날이었다. 하지만 예정보다 늦게 (아마도 8,9시쯤) 일어나면서 나의 계획은 대략 틀어지게 되었다. 게다가 동양문고에 가서 내가 당장 찾아볼 자료도 없지 않은가 하는 회의감으로 인해 일정은 급변하였고, 결국 로쿠기엔, 동양문고는 쉽게 포기되었다.

일본도 식후경 10
- 서서 먹는 쓰키미우동

耿君이 삼가 지음


그래도 황금 같은 일본에서의 하루를 호텔방에 쳐박혀 보낼 수는 없는 노릇. 어디론가 떠나야겠다는 생각에 일단은 호텔을 나와 JR 미나미센주 역으로 향했다. 어디로 가는 것이 좋을까. 우에노 역까지 조반 선 열차를 타고 가서, 야마노테 선으로 갈아탔다. 열차에 붙어있는 노선도를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여행 초기에 폐기했던 장소 중 하나인 '고마 신사[高麗神社]'가 떠올랐다. 그래, 오늘은 고마 신사에 가자!

러시 아워를 갓 지나 사람들의 온기가 여전히 느껴지는 야마노테 선 열차에 몸을 싣고 나는 이케부쿠로로 갔다. 그리고 이케부쿠로에서 노선을 갈아타고 오미야[大宮] 역으로 출발했다.
오미야 역에 도착한 것이 대략 10시 40분 경. 고마 신사는 예정에 없던 목적지였기 때문에, 나는 불안한 마음을 갖고, 열차 안의 노선도와 역 안내표지판에 의존해서 고마가와[高麗川] 역으로 가는 길을 찾았다. 사이쿄·가와고에 선[埼京·川越線]을 타고 가면 고마가와 방면이라고 하는데, 열차 안내 전광판을 보니 안타깝게도 고마가와까지 바로 가는 열차는 없고, 일단 가와고에까지 가는 열차가 보였다. 가와고에로 가면 뭔가 고마가와로 갈 방도가 생기겠거니 하고 시간을 보니 10시 56분 차다.

그 순간 나의 주린 배가 신호를 보내왔다. 하긴 아침도 제대로 먹지 않은 채 어느새 11시를 맞이하고 있었으니 지금까지 버틴 게 용하다. 뭔가 간단히 요기를 하고 가야겠다는 생각에 나는 다치쿠이소바[立ち喰いそば] 집을 찾았다. 다치쿠이소바 가게는 우리말로 풀어서 쓰자면 서서먹는 국수집 정도가 될 것 같다. 내가 다치쿠이'소바'라고 말을 하기는 했지만, 내가 본 바로는 그런 가게에서는 소바뿐만 아니라 우동도 함께 파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국수도 빨리 나오고, 서서 빨리 먹고 갈 수 있기 때문에, 신속히 한 끼 해결하기에 좋은 장소. 그동안 일본 여행을 와서 다치쿠이소바를 보기만 했지 들어가서 먹은 적은 한번도 없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체험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마침 열차 출발까지는 10분 남짓의 시간이 있다.

드디어 어떤 가게 앞에 섰다. 가게 안은 직장인들로 붐볐다. 나는 쿠폰 자판기에 300엔을 투입하고 '쓰키미우동' 쿠폰을 샀다. 쓰키미[月見]는 우리 말로 직역하면 '달맞이'인데, 계란 노른자를 띄운 것을 '쓰키미'라고 부른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서 쿠폰을 주고, '우동'을 달라고 말했다. 쿠폰에는 '소바/우동'이라고 되어 있어서 어느 쪽이든 선택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나는 소바같은 경우는 자루소바로 해서 차게 먹는 것을 좋아하지, 뜨거운 국물에 소바를 말아 먹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정말 순식간에 제공된 조촐한 쓰키미우동. 아무리 바빠도 사진은 한 장 찍어놓았다. 국수 양은 생각보다 꽤 많았고, 국물도 개운하니 맛이 좋았다. 후후 불어가면서 국수를 먹고 있자니, 나도 어쩐지 일본의 바쁜 샐러리맨이 되어 있는 것 같았다. 후다닥 먹어치우다보니 입안이 약간 얼얼해지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차가운 냉수 한 잔으로 입가심을 하면 한결 기분이 좋아진다. 든든하게 한 끼를 해결하고 가게 밖을 나왔다. 아직 시각은 10시 50분이 조금 지난 때, 정말 빨리 먹었구나;; 자 이제 가와고에 행 열차를 타러 플랫폼으로 가자~

耿君 識

다음 편에 계속

by 耿君 | 2009/10/12 02:35 | 일본에 가다 | 트랙백 | 핑백(3) | 덧글(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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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든 우동을 후루룩 후루룩 먹으면서 도쿄에서의 친구, 후배들과의 만남을 떠올리고, 더불어 나고야에서의 여행의 추억까지 회상할 수 있는 좋은 아이템이었다. 마사키 군, 쌩유~耿君 識다음 편에 계속 ... more

Linked at 耿君春秋 : 일본 속 고려 마.. at 2009/10/23 14:04

... 일본도 식후경 10에 이어서이번에 찾아가는 곳은 히다카 시[日高市]의 고마노사토[高麗鄕]. '고려'라는 한자 이름부터가 심상치 않아 보이는데, 이 일대는 과거 무사시 국[武藏國] 고려 군[高麗 ... more

Linked at 耿君春秋 : 일본도 식후경 1.. at 2009/12/13 22:57

... 었다. 열차를 두세 번인가 갈아타고 한참을 달린 끝에 내가 스이도바시 역에 내린 것은 오후 3시 40분 경. 급격히 배가 고파오기 시작했다. 그러고보니 나는 10시에 쓰키미우동을 아침 삼아 먹고 나서는 아직 점심도 먹지 않았구나. 곧 있으면 저녁 식사 시간인데 어떡할까 어떡할까...터벅터벅 걸어가던 나의 눈을 사로잡은 한 가게. 스테 ... more

Commented by Allenait at 2009/10/12 02:36
계란 노른자가 떠서 달맞이라.. 운치있군요
Commented by 耿君 at 2009/10/12 10:16
허허 그런가요 ㅋ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10/12 02:40
기차역 가락국수가 생각나네요. 요즘은 없는 역이 많아진...^^
Commented by 耿君 at 2009/10/12 10:17
우리나라 기차역의 가락국수 가게도 나름의 로망이 있는데 말이죠.
Commented by Scarlet at 2009/10/12 06:56
달맞이우동. 진짜 서정적이에요 ㅎㅅㅎ
Commented by 耿君 at 2009/10/12 10:17
ㅎㅎㅎ
Commented by rumic71 at 2009/10/12 07:22
오오사카에서 처음 먹었던 메뉴가 뜨끈한 소바...(그 가게엔 그것뿐이라고 하더군요)
Commented by 耿君 at 2009/10/12 10:17
헛 그렇군요; ㅋ
Commented by 밀리 at 2009/10/12 08:50
쓰키미..보단 츠키미..가 더 올바른 표기이지 아닐까 합니다 ^^
Commented by 耿君 at 2009/10/12 10:16
현행 일본어 표기법에 의하여 표기했습니다. 그런 점에서는 쓰키미가 더 '올바른' 표기일 것 같습니다만...
http://hyunk02.egloos.com/2172819
Commented by ㅇㅇ at 2009/10/12 16:15
누들로드에서 나온 그곳이네요.. 근데 여기에 여자손님들은 잘 없다던데 왜 그렇죠??
Commented by 耿君 at 2009/10/12 16:34
글쎄요 그것까진 저도 잘 모르겠네요;
Commented by rumic71 at 2009/10/12 17:07
타찌쿠이소바야 원체가 걍 쓱 들어가서 밥만 뚝닥 먹고 바로 나오는 곳이니 여자들 취향은 아니겠지요.
Commented by 현암 at 2009/10/13 00:28
으음 이걸로 경군님을 일본 식탐 전문 블로거로 임명하겠습니다(??)
Commented by 耿君 at 2009/10/13 10:03
지나친 말씀이옵니다. ㅎ
Commented by 유사매식자 at 2009/10/13 22:38
과연 食民史學의 ㅈ...
Commented by 耿君 at 2009/10/14 02:25
선생님께서는 유사買食者 아니십니까.
Commented by 유사매식자 at 2009/10/14 02:40
유사라서 굶어요.
Commented by rumic71 at 2009/10/14 21:47
과연... 유사시에만 밥을 사 드시고 평소엔 굶는...(펑)
Commented by 유사매식자 at 2009/10/16 23:24
배고파...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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