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8월 19일
뜨거운 바다 07 - 한국 정원
지난 편에 이어서
* 이번 뜨거운 바다 7편 <한국 정원>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타미 매원의 한국 정원은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통령으로 재임중일 때,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다소 돈독해지고 일본의 대중문화가 한국에 개방되는 일련의 무드 속에서 만들어지게 된 것입니다. 일본의 아름다운 온천도시 아타미에 있는 한국 정원을 둘러본 여행을 기록함으로써,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남기신 소중한 유산을 생각해보면서, 고인을 추모하고자 합니다.
뜨거운 바다 07
- 한국 정원
耿君이 삼가 지음
계단 위로 올라가니 아래로 단풍나무들과 다리가 내려다보이고, 멀리 울긋불긋 내지 파릇파릇한 산자락이 보이는 것이, 오 비교적 좋은 풍경이다!
일본인들도 너도나도 폰카로 찰칵찰칵. 시기가 시기라서 그런지 일본인들 중에는 마스크를 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확실히 일본 사람들은 감기 등의 질병이나 꽃가루 경보 같은 것에 민감하게 대처하는 것 같다.
오, 저기 보이는 한국식 가옥과 담벼락. 저것은 필시 한국정원이렷다!
'아타미 바이엔 한국정원'이라고 한글로 적혀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이 아타미 매원에 한국정원이 생겨나게 된 것일까?
때는 2000년 9월. 당시 대한민국 대통령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당시 일본 수상인 모리 요시로와 함께 한일 정상회담을 가졌다. 그 회담이 이루어진 장소가 바로 아타미였고, 이 두 사람은 아타미 매원을 방문하여 공원 경내를 산책하며 환담을 나누었다고 한다. 그리고 한일우호의 관계를 더욱 심화시킨 일을 기념하면서, 한일우호와 세계평화가 영구히 지속되기를 희망하는 의미에서, 매원 안에 조선시대 전통 양식으로 가옥을 지어 한국정원을 만들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아타미는 이미 이전부터 한국과의 인연의 끈을 잡고 있던 동네였다. 한국정원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 부근에 위 사진과 같은 기념비석이 누워 있었다. 저 파란 실루엣으로 돌에 새겨져 있는 인물은 바로 여자비행사 박경원(朴敬元, 1901~1933)이었다.
그렇다. 이 비석은 한국정원 건설에 즈음하여, 아타미 시에서 박경원 여사를 기억하고 한국과의 우호 평화의 증거를 보이기 위하여 세운 기념비였다. 기념비문은 일본어와 한국어로 적혀 있다. 한국어 문장은 직역이 많고 다소 어색한 번역도 보이지만, 그래도 대략 내용을 알아볼 수 있다. 위 비문의 내용과 두산 encyber 백과사전 '박경원' 항목의 글을 함께 참조하여 아래에 박경원과 아타미 시와의 인연에 대해 적어본다.
대구에서 태어난 박경원은 1917년 신명여학교를 중퇴하고 1920년 요코하마 기예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1922년부터 대구 자혜의원에서 간호사로 재직하다가, 1925년 일본 도쿄로 건너가 가마타 비행학교에 들어가 비행기 조종을 배웠고, 1928년에는 요요기 연병장에서 고도(高度)경기대회에서 3등을 하면서 2등 조종사 면허를 취득하게 되었다. 그리고 1933년, 그녀는 평소 희망하던 모국 방문 비행을 계획하여 8월 7일에 출발하게 되었다. 그녀의 비행기 이름은 '청연(靑燕)'. 한국에서도 장진영 주연의 동명 영화가 개봉된 적이 있었다. 박경원의 모국 방문 비행은 여성으로서는 최초의 장거리 비행이라, 관계자 및 민간인들의 성대한 환송을 받았다고 한다.
드디어 1933년 8월 7일 오전 10시 35분. 비행기가 하네다 공항을 출발하여 한반도로 향했다. 하지만 하코네 상공에서 짙은 안개로 인해 방향을 잃은 청연호는 아타미 시에 가까운 구로타케[玄岳] 산중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비행을 시작한 지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은 오전 11시 25분. 박경원은 꿈에 그리던 모국 방문을 하지 못하고 안타깝게 세상을 뜨게 되었다. 이튿날 인근 다가 촌[多賀村] 사람들은 추락 잔해에서 그녀의 시신을 수습하여 화장식을 치러주었다. 1934년 8월 7일, 그녀가 사망한 지 1주기가 되던 그 날, 전 다가 촌장인 니시지마 히로시[西島弘]는 사비를 털어 추락 현장에 '조인영지비(鳥人靈誌碑)'를 세웠고, 1981년 봄에는 지역 주민들에 의해 '박경원 양 조난위령비'가 세워졌다. 주민들은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박경원 여사의 혼이 편히 쉬기를 바라며, 추락 현장의 벌초와 위령비 관리를 꾸준히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사연을 가진 아타미에 한국정원이 세워지게 되었으니, 이것 참 인연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 같다. 그리하여 2002년 8월 28일, 아타미 시에서는 박경원의 추락 사고와 아타미 지역 주민의 활동에 대한 기억을 담아 이런 기념비를 제작한 것이다. 비석을 물끄러미 보고 있자니, 박경원 여사의 이야기에 마음이 먹먹해지면서도, 아타미 사람들의 따스한 마음, 그리고 한일 우호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이야기에 또 훈훈함을 느끼게 되었다.
아직 꽃이 피지 않은 무궁화나무. 일본어로는 무궁화를 '무쿠게'라고 한다. '한국의 나라 꽃'이라고 적은 것이 눈에 들어온다. 무궁화꽃이 핀다는 8~9월에 찾아오면 한국정원에 무궁화가 화사하게 핀 모습을 볼 수 있는건가?
자, 이제 대문을 들어가보자. 이리오너라~
들어가자 '우호 평화'라는 두 단어가 딱 보인다. 그 밑에는 일본국 내각총리대신 모리 요시로, 대한민국 대통령 김대중의 친필 서명이 적혀 있다. 때는 2000년 9월 24일이다.
이곳이 정원의 중심 가옥인 '인연의 집'. 현판의 글씨가 어쩐지 아마추어스럽다. ㅎ 내부 수리중이었는지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하게 해서 겉만 둘러보았다. 일본에서 이런 본격적 한국식 가옥을 보게 되는 것은 참 재미있는 경험이다.
정원 한켠에 설치되어 있는 분천(噴泉) 시설. 솟는 샘물이다.
그 옆에는 위 사진과 같은 안내문이 세워져 있다. '한국 정원에서는 물이 소중하게 다루어져, 특히 물의 분출 부분에는 의장이 잘 꾸며져 있습니다. 형태는 '음양사상'을 표현한 것이 많이 있습니다'라는 해설이 적혀 있군. 이곳 이외에도 정원 안의 각종 시설 등에 대해서는 이러한 안내문이 붙어 있어 일본 관광객들에게 설명을 해주고 있다. 부끄럽긴 하지만 나도 이 안내문을 통해 모르는 걸 알기도 했다.
장독대랑 굴뚝도 만들어놓았다. ㅎㅎㅎ
이곳저곳 둘러보고 있는데, 문이 닫히려는 것이 보였다. 한국정원이 좀 일찍 마감을 하려는 모양이었다. 황급히 문을 빠져나와 정원 밖으로 나오려는데, 문가의 오른편 뜰에 나란히 심어져 있는 세 그루 나무가 보였다. 한국정원 조성 당시 심은 식수인 모양이다. 왼쪽부터 모리 요시로 (당시 총리), 가와구치[川口] (당시 아타미 시장), 조세형 (당시 주일본대사) 씨가 심은 것이다.
다음 편에 계속
* 이번 뜨거운 바다 7편 <한국 정원>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타미 매원의 한국 정원은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통령으로 재임중일 때,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다소 돈독해지고 일본의 대중문화가 한국에 개방되는 일련의 무드 속에서 만들어지게 된 것입니다. 일본의 아름다운 온천도시 아타미에 있는 한국 정원을 둘러본 여행을 기록함으로써,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남기신 소중한 유산을 생각해보면서, 고인을 추모하고자 합니다.
뜨거운 바다 07
- 한국 정원
耿君이 삼가 지음




때는 2000년 9월. 당시 대한민국 대통령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당시 일본 수상인 모리 요시로와 함께 한일 정상회담을 가졌다. 그 회담이 이루어진 장소가 바로 아타미였고, 이 두 사람은 아타미 매원을 방문하여 공원 경내를 산책하며 환담을 나누었다고 한다. 그리고 한일우호의 관계를 더욱 심화시킨 일을 기념하면서, 한일우호와 세계평화가 영구히 지속되기를 희망하는 의미에서, 매원 안에 조선시대 전통 양식으로 가옥을 지어 한국정원을 만들게 된 것이었다.


대구에서 태어난 박경원은 1917년 신명여학교를 중퇴하고 1920년 요코하마 기예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1922년부터 대구 자혜의원에서 간호사로 재직하다가, 1925년 일본 도쿄로 건너가 가마타 비행학교에 들어가 비행기 조종을 배웠고, 1928년에는 요요기 연병장에서 고도(高度)경기대회에서 3등을 하면서 2등 조종사 면허를 취득하게 되었다. 그리고 1933년, 그녀는 평소 희망하던 모국 방문 비행을 계획하여 8월 7일에 출발하게 되었다. 그녀의 비행기 이름은 '청연(靑燕)'. 한국에서도 장진영 주연의 동명 영화가 개봉된 적이 있었다. 박경원의 모국 방문 비행은 여성으로서는 최초의 장거리 비행이라, 관계자 및 민간인들의 성대한 환송을 받았다고 한다.
드디어 1933년 8월 7일 오전 10시 35분. 비행기가 하네다 공항을 출발하여 한반도로 향했다. 하지만 하코네 상공에서 짙은 안개로 인해 방향을 잃은 청연호는 아타미 시에 가까운 구로타케[玄岳] 산중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비행을 시작한 지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은 오전 11시 25분. 박경원은 꿈에 그리던 모국 방문을 하지 못하고 안타깝게 세상을 뜨게 되었다. 이튿날 인근 다가 촌[多賀村] 사람들은 추락 잔해에서 그녀의 시신을 수습하여 화장식을 치러주었다. 1934년 8월 7일, 그녀가 사망한 지 1주기가 되던 그 날, 전 다가 촌장인 니시지마 히로시[西島弘]는 사비를 털어 추락 현장에 '조인영지비(鳥人靈誌碑)'를 세웠고, 1981년 봄에는 지역 주민들에 의해 '박경원 양 조난위령비'가 세워졌다. 주민들은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박경원 여사의 혼이 편히 쉬기를 바라며, 추락 현장의 벌초와 위령비 관리를 꾸준히 하였다고 한다.









耿君 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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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9/08/19 23:29 | 일본에 가다 | 트랙백 | 핑백(2)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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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제 눈 인연의 집 처마랑 지붕이 직각으로 보입니다. 한국 가옥의 처마와 지붕은 곡선이 생명인데 그게 잘 드러나지 않았네요. 어쩐지 부자연스러워 보입니다.
3. 뭐 그럴 수도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