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바다 03 - 세이자에몬의 탕

지난 편에 이어서

즈소 인차철도 아타미 역사 터에 서서 안내판을 읽으며 잠시 시간을 보낸 뒤, 오미야의 소나무 보러 가던 길을 재촉했다. 그런데 아타미의 거리는 산 언덕에 위치해 있어 비탈져 있기도 하고, 다소 구불구불하게 이어져 있기 때문에, 길을 걸으면서도 '지금 내가 제대로 된 길을 따라가고 있는 건가' 하는 의구심이 마구마구 들었다. 그러던 차에,

'오미야의 소나무, 선비치 400m 왼쪽으로' 라는 보도블럭의 표지판을 본 나는 신이 나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뜨거운 바다  03
- 세이자에몬의 탕

耿君이 삼가 지음


위 지도는 앞서 평화 거리에서 보았던 안내도의 일부이다. 저기 보면 파란색 목욕탕 마크가 7개 보이는데, 저것이 바로 아타미 7탕이라 불리는 아타미의 유명한 온천 용출지이다. 고래로부터 이름이 났던 이 7탕은 다이쇼 시대까지만 해도 아타미의 명 온천으로서 이름을 남기고 있었으나, 오늘날에는 입욕장은 존재하지 않고, 대부분 용출을 멈추었다고 한다. 그 7탕의 목록을 아래에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 오유[大湯]
* 코사와[小澤]의 탕
* 노나카[野中]의 탕
* 후로[風呂]의 탕
* 사지로[佐治郞]의 탕
* 세이자에몬[淸左衛門]의 탕
* 가와라[河原]의 탕

오미야의 소나무, 선비치가 나온다는 왼쪽 길로 꺾어들어갔을 때 내가 마주친 것은, 바로 이 아타미 7탕 중 하나인 세이자에몬의 탕이었다.

이것이 바로 세이자에몬의 탕이다. 지금은 물의 흔적은 거의 찾아 볼 수 없게 되어있다. 바위 틈 사이에 귀를 갖다대니 뭔가 물이 솟는 듯한 소리가 들렸던 건 내 귀가 안좋은 탓이었을까.
세이자에몬의 탕이라는 이름이 붙은 유래는 다음과 같다. 이 동네의 농민이던 세이자에몬이란 사람이 말을 타고 급히 이동하다가, 이 지점을 지나면서 말에서 떨어져 그만 이 곳의 끓는 물 속으로 빠져버렸다고 한다. 세이자에몬은 이 탕에서 화상을 입고 사망하였고, 이후 이곳을 세이자에몬의 탕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메이지 시대까지만 해도 이곳에서는 끊임없이 물이 흘러넘쳤는데, 사람이 큰 소리를 외치면 물이 많이 솟고, 조그만 소리를 내면 조금 솟았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안내판에는 『아타미 온천도집』이라는 책에 전하는 과거 세이자에몬의 탕의 그림이 있어 당시의 모습을 짐작하게 해주었다. 옆에 세이자에몬의 탕 '스탬프'도 있었는데, 아마도 7탕에 다 스탬프가 있어서 스탬프를 모을 수 있게 한 모양이다.
세이자에몬의 탕을 뒤로 하고 앞으로 직진하니 어느새 바다가 나를 맞이한다. 야자수가 있는 풍경이 예사롭지가 않다.

다음 편에 계속

耿君 識

by 耿君 | 2009/08/01 17:07 | 일본에 가다 | 트랙백 | 핑백(2)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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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 되었지만, 사람의 힘으로 운행되는 즈소 인차철도는 당시 아타미에 교통 편의를 제공하고 지역 발전을 돕는, 나아가 아타미 선 등의 철도 부설로 이어지는 매우 의미있는 철도였다.다음 편에 계속耿君 識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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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편에 이어서오자키 고요[尾崎紅葉]가 쓴 소설 『금색야차(金色夜叉)』(일본어 발음으로는 '곤지키야샤')는 1897년 1월 1일부터 1902년 5월 11일까지 『요미우리 신문[讀賣新聞] ... more

Commented by Allenait at 2009/08/01 23:17
허... 지금은 멈추었다니 아쉽군요
Commented by 耿君 at 2009/08/02 21:04
족탕이라도 할 수 있다면 좋았을텐데 말이죠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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