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7월 29일
뜨거운 바다 02 - 인차철도를 아시나요?
지난 편에 이어서
다시 아타미 역으로 돌아온 나는 이제 아타미 시내의 명소들을 찾아다니기로 했다. 아타미는 풍광 좋은 바닷가의 온천 휴양지로도 유명하지만, 오자키 고요[尾崎紅葉]의 신문 연재소설 『금색야차(金色夜叉)』의 무대로도 유명하다. 『금색야차』의 남자 주인공 하자마 간이치[間貫一]와 여자 주인공 오미야[お宮]가 이별하는 장소가 바로 이 아타미의 해변이다. 그 해변가에는 오미야의 소나무라 불리는 나무가 심어져 있고 주변 일대가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는데, 여기가 하나의 관광 명소가 되어 있다. 아타미에서의 두 번째 여행 목적지는 바로 이 '오미야의 소나무'이다.
뜨거운 바다 02
- 인차철도를 아시나요?
耿君이 삼가 지음
아타미 역 앞에는 위 사진과 같은 아케이드 상점가가 있었는데, 이름하야 '평화 거리[平和通り]'. 중소 규모의 상점들이 나란히 늘어서 있는 거리를 걸으면서, 어쩐지 훈훈한 느낌이 들었다.
여행길의 시작은 늘 가까이에 있는 지도를 확인하는 것에서 이루어진달까. 평화 거리의 어느 빌딩 한켠의 벽에 붙어 있는 안내도를 확인하였다. 우선 평화 거리를 지나서 아타미 7탕이 있는 지역을 통과한 다음, 아타미 선비치 공원과 오미야의 소나무가 있는 지점으로 가는 것으로 코스를 확정했다.
평화 거리를 지나 어느 골목에 다다랐을 때 발견한 과자 가게 간판이다. 위의 간판은 과연 뭐라고 적혀 있는 것이냐 하면,
御 菓 子 処
石 舟 庵
이렇게 적혀 있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는 '아니, 13처럼 생긴 저 글자가 御라고?' 하고 흠칫 놀라는 분들도 계실 것 같은데, 일본 고문서 등을 보게 되면 御를 저런 식으로 흘려서 쓰는 경우를 왕왕 보게 된다.
여행을 하다보면, 여행 계획을 세울 당시에는 전혀 몰랐던 유적 내지 관광지 등을 뜻하지 않게 발견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럴 때면 상당히 마음이 흐뭇해진다. 뭔가 보물을 찾은 것 같기도 하고, 새로운 지식을 얻게 되어 즐겁기도 하다. 아타미에서도 이런 일을 겪게 되었다. 정처없이 오미야의 소나무로 향하던 중에 '즈소 인차철도[豆相人車鐵道] 아타미 역사 터'라는 유적을 만나게 된 것이다.
아타미는 온천으로 유명했지만, 지세가 험해서 메이지 시대에 들어와서도 철도(도카이도 본선)도 당초에는 이곳을 지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 지역 주민들이 철도 부설 운동을 벌이기에 이르렀는데, 마침 1888년에 오다와라 일대까지 오다와라 마차 철도[小田原馬車鐵道]가 들어서게 되었다. 아타미 사람들은 이 오다와라 마차 철도와 연계되는 형식으로 아타미에 철도를 부설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부설 자금이 잘 모이지 않아서 애를 먹던 차에, 유명한 고슈[甲州] 재벌의 한 사람인 사업가 아메미야 게이지로[雨宮敬次郞]가 보통 철도가 아닌 '인차철도'를 깔자는 제안을 했다.
인차철도란 무엇이냐면, 사람이 객차나 화물차를 '밀어서' 움직이는 철도였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완전 말도 안되는 철도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인차철도 방식은 1920년대까지만 해도 많은 지역에서 존재하고 있던 것이었다. 이 인력을 활용한 철도 시스템은 우선 건설 비용을 비롯한 초기 비용이 싸게 먹히고, 열차를 미는 인부의 인건비가 싸며, 유지비가 별로 안들고 운행이 간편하다는 장점이 있었기 때문에 지방의 소규모 연계철도로서 인기가 높았던 것이다. 결국 아타미의 지역 유지들은 아메미야와 공동출자하여 즈소 인차철도를 설립하였다. 여기서 즈소[豆相]라는 것은 이즈[伊豆]의 豆와 사가미[相模]의 相을 따서 합친 것이다. 1895년에 처음 개통된 즈소 인차철도는 1900년에 이르기까지 그 노선이 연장 개통되었다.
이 즈소 인차철도 아타미 역사는 바로 1895년 개통 당시 세워졌다. 아타미 역사 터의 안내판에 따르면 당시 객차는 8명 정원이었고, 이를 세 명의 인부가 밀어서 운행했다고 한다. 사진 속 기념비의 조각에도 세 사람이 열차를 미는 모습이 보인다. 달랑 8명이 탈 수 있는 객차 안에서도 그 위치에 따라 상, 중, 하의 등급이 있었는데, 아타미에서 오다와라까지 상등객차 요금은 1엔이었고, 3세 이하는 무료, 19세 미만은 반액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인건비가 점차 높아짐에 따라 즈소 인차철도는 1907년에 이름을 아타미 철도로 바꾸고, 증기기관차가 객차를 끄는 경편철도로 변경하게 되었다. 이때 인차철도의 궤도 폭을 넓혀서 경편철도 궤도로 바꾸는 공사가 이루어졌는데, 이 공사 때의 이야기를 윤색하여 소설로 쓴 것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도롯코」라고 한다. 하지만 아타미 철도는 이내 사업 부진 상태에 빠졌고, 1908년에 아메미야가 운영하는 회사인 대일본궤도에 매수되었다. 1920년에는 다시 국가에 매각되었고, 철도 아타미 선이 개통되면서 오다와라-마나즈루 사이의 복선 구간이 폐지되는 등의 우여곡절을 겪다가, 결국 간토 대지진 때 노선 전체가 불통이 되어 1924년에 전체가 폐지되고 말았다. 대신 아타미에는 단나[丹那] 터널이 개통되면서 도카이도 본선이 지나가게 되었다.
이제는 흔적조차 찾기 어렵게 되었지만, 사람의 힘으로 운행되는 즈소 인차철도는 당시 아타미에 교통 편의를 제공하고 지역 발전을 돕는, 나아가 아타미 선 등의 철도 부설로 이어지는 매우 의미있는 철도였다.
다음 편에 계속
다시 아타미 역으로 돌아온 나는 이제 아타미 시내의 명소들을 찾아다니기로 했다. 아타미는 풍광 좋은 바닷가의 온천 휴양지로도 유명하지만, 오자키 고요[尾崎紅葉]의 신문 연재소설 『금색야차(金色夜叉)』의 무대로도 유명하다. 『금색야차』의 남자 주인공 하자마 간이치[間貫一]와 여자 주인공 오미야[お宮]가 이별하는 장소가 바로 이 아타미의 해변이다. 그 해변가에는 오미야의 소나무라 불리는 나무가 심어져 있고 주변 일대가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는데, 여기가 하나의 관광 명소가 되어 있다. 아타미에서의 두 번째 여행 목적지는 바로 이 '오미야의 소나무'이다.
뜨거운 바다 02
- 인차철도를 아시나요?
耿君이 삼가 지음



御 菓 子 処
石 舟 庵
이렇게 적혀 있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는 '아니, 13처럼 생긴 저 글자가 御라고?' 하고 흠칫 놀라는 분들도 계실 것 같은데, 일본 고문서 등을 보게 되면 御를 저런 식으로 흘려서 쓰는 경우를 왕왕 보게 된다.

아타미는 온천으로 유명했지만, 지세가 험해서 메이지 시대에 들어와서도 철도(도카이도 본선)도 당초에는 이곳을 지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 지역 주민들이 철도 부설 운동을 벌이기에 이르렀는데, 마침 1888년에 오다와라 일대까지 오다와라 마차 철도[小田原馬車鐵道]가 들어서게 되었다. 아타미 사람들은 이 오다와라 마차 철도와 연계되는 형식으로 아타미에 철도를 부설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부설 자금이 잘 모이지 않아서 애를 먹던 차에, 유명한 고슈[甲州] 재벌의 한 사람인 사업가 아메미야 게이지로[雨宮敬次郞]가 보통 철도가 아닌 '인차철도'를 깔자는 제안을 했다.
인차철도란 무엇이냐면, 사람이 객차나 화물차를 '밀어서' 움직이는 철도였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완전 말도 안되는 철도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인차철도 방식은 1920년대까지만 해도 많은 지역에서 존재하고 있던 것이었다. 이 인력을 활용한 철도 시스템은 우선 건설 비용을 비롯한 초기 비용이 싸게 먹히고, 열차를 미는 인부의 인건비가 싸며, 유지비가 별로 안들고 운행이 간편하다는 장점이 있었기 때문에 지방의 소규모 연계철도로서 인기가 높았던 것이다. 결국 아타미의 지역 유지들은 아메미야와 공동출자하여 즈소 인차철도를 설립하였다. 여기서 즈소[豆相]라는 것은 이즈[伊豆]의 豆와 사가미[相模]의 相을 따서 합친 것이다. 1895년에 처음 개통된 즈소 인차철도는 1900년에 이르기까지 그 노선이 연장 개통되었다.
이 즈소 인차철도 아타미 역사는 바로 1895년 개통 당시 세워졌다. 아타미 역사 터의 안내판에 따르면 당시 객차는 8명 정원이었고, 이를 세 명의 인부가 밀어서 운행했다고 한다. 사진 속 기념비의 조각에도 세 사람이 열차를 미는 모습이 보인다. 달랑 8명이 탈 수 있는 객차 안에서도 그 위치에 따라 상, 중, 하의 등급이 있었는데, 아타미에서 오다와라까지 상등객차 요금은 1엔이었고, 3세 이하는 무료, 19세 미만은 반액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인건비가 점차 높아짐에 따라 즈소 인차철도는 1907년에 이름을 아타미 철도로 바꾸고, 증기기관차가 객차를 끄는 경편철도로 변경하게 되었다. 이때 인차철도의 궤도 폭을 넓혀서 경편철도 궤도로 바꾸는 공사가 이루어졌는데, 이 공사 때의 이야기를 윤색하여 소설로 쓴 것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도롯코」라고 한다. 하지만 아타미 철도는 이내 사업 부진 상태에 빠졌고, 1908년에 아메미야가 운영하는 회사인 대일본궤도에 매수되었다. 1920년에는 다시 국가에 매각되었고, 철도 아타미 선이 개통되면서 오다와라-마나즈루 사이의 복선 구간이 폐지되는 등의 우여곡절을 겪다가, 결국 간토 대지진 때 노선 전체가 불통이 되어 1924년에 전체가 폐지되고 말았다. 대신 아타미에는 단나[丹那] 터널이 개통되면서 도카이도 본선이 지나가게 되었다.
이제는 흔적조차 찾기 어렵게 되었지만, 사람의 힘으로 운행되는 즈소 인차철도는 당시 아타미에 교통 편의를 제공하고 지역 발전을 돕는, 나아가 아타미 선 등의 철도 부설로 이어지는 매우 의미있는 철도였다.
다음 편에 계속
耿君 識
# by | 2009/07/29 14:42 | 일본에 가다 | 트랙백 | 핑백(2)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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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간중간에는 화석이 들어있는 대리석도 있다고 한다.그럼 원형 홀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감상해보자.이렇게 MOA미술관을 뒤로 하고, 나는 다시 아타미 역으로 버스를 타고 떠나갔다.다음 편에 계속耿君 識* MOA미술관주소: 静岡県熱海市桃山町26-2전화번호: 0557-84-2511홈페이지: http://crayon.securesites.net/moaart/index ... more
... 지난 편에 이어서즈소 인차철도 아타미 역사 터에 서서 안내판을 읽으며 잠시 시간을 보낸 뒤, 오미야의 소나무 보러 가던 길을 재촉했다. 그런데 아타미의 거리는 산 언덕에 위치해 있어 비탈 ... more
덧붙여 단나터널 역시 당시 조선인 노동자들의 아픔이 묻어 있는 곳이라 합니다. 순직비로부터 확인되는 순직한 조선인 노동자는 7명이라 하고 , 순직비는 단나 신사 내에 있다고 하네요.
http://www.knowledge.go.kr/ > '단나터널 순직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