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사소한 발견 15 - 화랑세기를 보다가

요즘 방영중인 드라마 '선덕여왕'이 박창화가 필사하였다는 『화랑세기』의 내용을 많이 담고 있는 것 같아서, 문득 집에 이종욱 역주의 『화랑세기』가 있다는 것을 생각해내고 이를 꺼내서 읽어보았다. 그런데 보다보니 두 가지 점이 떠올랐다.

1. 『화랑세기』 속 인물들의 인명에서 아버지의 이름자를 받아쓰는 양상이 간혹 보이는데, 일본 고중세 무사들의 편휘(偏諱)와 매우 유사해보인다. 사실 이 이야기는 예전에도 잠깐 언급했었는데, 관견으로는 삼국사기, 삼국유사에서는 이런 현상이 별로 안 보였던 것 같다. 확실히 따져봐야 아는 거지만...

2. 『화랑세기』에 나오는 진골정통이니 대원신통이니 하는 말을 들으니, 일본 남북조 시대의 '대각사통', '지명원통'이 떠오른다.

다이카쿠지 황통[大覺寺統], 지묘인 황통[持明院統]은 가마쿠라 시대 일본 천황가 계보에서의 두 갈래 황통을 말한다. 88대 천황인 고사가 천황[後嵯峨天皇]은 황위에서 물러나 상황이 되었고, 그 아들들인 고후카쿠사[後深草] 천황, 가메야마[龜山] 천황이 차례로 89대, 90대 천황으로 즉위하였다. 그리고 그들 또한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상황 중 한 명만이 원정(院政)을 담당하는 치천의 군[治天の君]이 될 수 있었고, 그 자리에는 고사가 상황이 앉아 있었다.

그런데 1272년, 고사가 상황이 다음 치천의 군을 지명도 하지 않고 세상을 떠났다. 막부는 상황의 뜻을 따른다며 가메야마 상황을 치천의 군으로 지명했고, 고후카쿠사는 이에 불만을 품게 되었다. 이후 가메야마 계열은 다이카쿠지 황통, 고후카쿠사 계열은 지묘인 황통으로 나뉘어져, 향후 치천의 군 후계자 지위와 천황의 황위, 천황가 장원들의 소유권 등을 놓고 대립하게 된다. 이러한 대립은 남북조 시대로까지 이어진다.

무슨 무슨 '통'이라고 부르는 것이 용어가 비슷해서 생각이 났다.


덤으로 좀 지난 기사이지만, 이영훈 교수님의 화랑세기 진서론 논문 관련 신문기사나 올려보자.
http://www.donga.com/fbin/searchview?cp=ts&n=200301070286

耿君 識

by 耿君 | 2009/06/08 16:34 | 사소한 발견 시리즈 | 트랙백(1) | 덧글(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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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구라 구라 구라 at 2009/06/08 23:18

제목 : 화랑세기 위서논쟁 정리..
新 사소한 발견 15 - 화랑세기를 보다가위서논쟁의 정리는 내가 할 수준이 아니고,그냥 책에 있는거 베끼는 수준이다.뭐 짧으니까 인용해도 별 문제가 없다고 봄.개인적으로는 솔직히 위서인지 아닌지 반반이다.소위 위서가 아니라는 진본이라는 논거 중에제일 합리적으로 보이는게 "화랑세기"에만 보이는 향가이다.이 향가를 조작해냈다면, 정말 양주동 선생이 혀깨물고 다시 무덤속에서 벌떡 일어날 일이지.그치만 사료적 가치에 대해서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면, ......more

Commented by 한단인 at 2009/06/08 17:05
이영훈 교수가 이런 것도 손댔군요. OTL
Commented by 耿君 at 2009/06/08 18:59
주제가 노비와 관련된 것이더군요.
Commented by 야스페르츠 at 2009/06/08 17:36
왠지 이영훈 교수도 나중에 신용하 교수처럼 병신 인증할 것 같다는 생각이....
Commented by 비느하스 at 2009/06/08 17:40
이영훈 선생이 고문서학회장인 건 알고 있었는지?

족보로 인구수를 고증한 박사학위논문의 분석방식이 이상해서 비판을 받기는 하지만, 여하간 그런 뻘짓을 통하긴 해서 나름 고문서에 대한 지식은 있음. 무조건 화랑세기 진서론을 추단했다고 해서 돼지하고 비교를 할 게 되나...
Commented by 耿君 at 2009/06/08 19:00
뭐 저는 별 생각 없습니다. 아직은 판단을 유보합니다.
Commented by 自重自愛 at 2009/06/08 20:53
그러고 보니 1번의 경우는 김성호가 [중국진출 백제인의 해상활동 천오백년]에서 [화랑세기]가 위작이 아니라는 근거로 활용하기도 했군효.

대원신통은 모계계승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Commented by 耿君 at 2009/06/08 20:57
1번은 관점에 따라서 위작의 근거가 될 수도 있고 진서의 근거가 될 수도 있고 할 것 같습니다.

그냥 '통'이라는 표현을 쓴 게 눈에 들어와서요.ㅋ
Commented by 말코비치 at 2009/06/23 23:41
화랑세기에도 대원신통이 뭐고 진골정통이 뭔지는 별 얘기가 없더군요. 기존에 알려진 성골, 진골과의 관계도 불분명하고..
Commented by 耿君 at 2009/06/24 11:10
저도 본문에서는 그런 말 잘 쓰이는 지 모르겠더군요.
Commented by 말코비치 at 2009/06/23 23:42
참고로 이영훈 교수는 역사가 아닌 '경제학' 전공이며, 뉴라이트 경제사가로 유명합니다.
Commented by 耿君 at 2009/06/24 11:09
네 뭐 그 분이야 유명하시니까 다들 아실 듯.ㅋ
Commented by 그러니깐 at 2009/08/22 15:35
그러니깐 니가 하고 싶은 말은

강단사학 옹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Commented by 耿君 at 2009/08/22 19:53
옹호할 강단사학이라는 게 있기는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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