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3월 24일
소금 가마솥 02 - 어마어마한 계단
지난 편에 이어서
이번에 찾아가는 시오가마 신사는 도호쿠 지방에서 유서깊은 신사로 유명하다. 정확한 창건 연도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고닌시키 주세장[弘仁式主稅帳](820년)에 그 이름이 보이는 것으로, 이 신사가 9세기 전반에 이미 조정으로부터 제사료를 받는 유수 신사 중 하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무쓰노쿠니 제염업의 중심지에 창건된 이 신사는 이후 오슈 후지와라 가문, 무쓰노쿠니 유수직인 이사와[伊澤] 가문, 그리고 센다이 번의 다테 가문의 비호를 받았고, 지금의 신사 건물은 센다이 번의 4대 번주 다테 쓰나무라[伊達綱村]가 1695년에 착공하여 1704년에 완성된 것이라고 한다.
소금 가마솥 02
- 어마어마한 계단
耿君이 삼가 지음
드디어 시오가마 신사의 입구 앞에 섰다. 서는 순간 나의 입이 쩍 벌어졌다. 예상치 못한 어마어마한 장면에 일단 놀랐다. 도대체 계단이 몇개나 되는 것이며, 뭐 저렇게 높은 곳에 위치해 있는 거냐! 정말 웅장하기 그지없었다.
입구 어귀 오른편에 세워진 긴 돌기둥에는 '도호쿠[東北] 진호(鎭護) 시오가마 신사'라는 글자가 믿음직스럽게 새겨져 있었다. 정말 이 정도의 위세라면 도호쿠 전체를 진호하고도 남을 것 같았다.
신사 본전으로 올라가는 계단 앞에 세워진 도리이 현판에는 '무쓰노쿠니 이치노미야[陸奧國一宮]', 즉 지금의 도호쿠 동부인 무쓰노쿠니의 제일 가는 신궁이라는 말이 적혀 있다.
그리고 계단 앞 쇠등롱 앞에는 이런 조그마한 물건이 놓여 있었다. 뭔가 하고 관찰해보니 그림 한 장과 한 외국인을 소개하고 있다.
쥘 브뤼네(1838~1911)는 막부가 요청한 프랑스의 군사고문단의 일원으로 1867년에 일본으로 왔다. 그는 신정부군과 구 막부군 사이에 보신 전쟁[戊辰戰爭]이 발발하자, 신정부를 지지한 주일 프랑스 공사를 비난하고, 에노모토 다케아키[榎本武揚] 등 철저 항전을 외치는 막부 신료들을 따라 구 막부 함선 8척을 데리고 하코다테로 도주했다. 도주 도중인 1868년 10월 12일, 배는 시오가마에 기항했고, 함선 수리와 물자 보급, 신센구미[新選組]와 아이즈 번사들의 탑승을 위해 1개월 정도 정박하게 되었다. 브뤼네는 이때 에노모토와 함께 센다이 번주를 알현하고, 군사회의에 참석하였으며, 남쪽 전선을 시찰하면서 센다이 주변을 돌아다니고 스케치를 남기기도 했는데, 그때 남긴 스케치 중 하나가 바로 '시오가마 신사 오모테산도[表參道]'라는 그림이었다.
1869년, 브뤼네는 고료카쿠[五稜郭] 점령 직전에 프랑스 군함으로 도주하여 프랑스로 돌아갔고, 이후 파리에서 군사재판을 받아 가벼운 처벌을 받고, 나중에 육군참모총장에까지 진급했다고 한다. 브뤼네는 프랑스로 돌아갈 때 일본에서 그렸던 스케치들을 다 가지고 돌아갔는데, 일-프 교류사 연구자인 크리스티앙 폴락이 브뤼네의 손자 안드레를 찾아가 스케치들을 발견했다고 한다. 폴락은 1988년 브뤼네의 손자의 미망인 카트린느를 하코다테로 초대하여 에노모토의 후손들과 대면시키고 스케치 작품을 도립 하코다테 미술관에서 공개했다. 그리고 이때 공개된 스케치들을 주오코론 사[中央公論社] 사장 시마나카 호지[嶋中鵬二]가 '프랑스 사관 브뤼네의 스케치 100장'이라는 이름으로 출판했다고 한다. 이 출판된 스케치집을 시오가마 시의 문화재보호위원 오가와 스미오[小川澄夫] 씨가 보고, 미술관을 방문하여 '절의 계단'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던 스케치가 실은 시오가마 신사의 풍경을 그린 것임을 확인했다. 그리하여 2004년에 시오가마 신사 참배도 앞에 스케치가 인쇄된 전시물을 전시하게 된 것이다. 스케치는 아래와 같다.
1868년에 브뤼네가 그린 스케치이다. 오늘날의 모습과 비교해보면 그림 속의 계단이 훨씬 더 길어보이는데, 어쨌든 시오가마 신사의 긴 참배 계단과 특징이 잘 살아 있는 그림 같다.
계단 앞에 섰다. 이 계단을 다 올라가야 시오가마 신사 경내로 들어갈 수 있단 생각에 아찔해졌다. 멀리서 보면 참 멋있지만 올라갈 생각을 하면 아뜩해지는 걸 어쩔 수 없다. 와 정말 높구나.
절반 쯤 올라왔을까. 숨을 고르기 위해 잠시 멈춰섰다. 앞에 걸어가시는 두 할머니분도 계단을 오르시다가 여러 차례 쉬어가신다. 신체 건강한 청년이 올라가는데도 숨이 가빠지는데 얼마나 힘겨우실지.
걸어온 계단을 내려다보니 꽤 높은 곳까지 올라왔음을 알 수 있었다. 이거 꽤나 공포스럽다. 여기서 잘못해서 굴러떨어진다면... 윽,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위로 위로 올라갔다.
계단 양 옆에 깃발들이 세워져 있는데, 그 깃발의 내용인 즉 시오가마 신사의 18회 식년 천궁을 알리는 것이었다. 식년 천궁(式年遷宮)이란 정해진 햇수가 지날 때마다 신사의 본궁 건물을 새로 지어 신을 옮겨 모시는 일을 말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다음 이세 신궁 포스팅 때 자세하게 이야기할까 한다.
아 이제 거의 다 왔다. 드디어 시오가마 신사 경내로 들어간다.
다음 편에 계속
이번에 찾아가는 시오가마 신사는 도호쿠 지방에서 유서깊은 신사로 유명하다. 정확한 창건 연도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고닌시키 주세장[弘仁式主稅帳](820년)에 그 이름이 보이는 것으로, 이 신사가 9세기 전반에 이미 조정으로부터 제사료를 받는 유수 신사 중 하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무쓰노쿠니 제염업의 중심지에 창건된 이 신사는 이후 오슈 후지와라 가문, 무쓰노쿠니 유수직인 이사와[伊澤] 가문, 그리고 센다이 번의 다테 가문의 비호를 받았고, 지금의 신사 건물은 센다이 번의 4대 번주 다테 쓰나무라[伊達綱村]가 1695년에 착공하여 1704년에 완성된 것이라고 한다.
소금 가마솥 02
- 어마어마한 계단
耿君이 삼가 지음





1869년, 브뤼네는 고료카쿠[五稜郭] 점령 직전에 프랑스 군함으로 도주하여 프랑스로 돌아갔고, 이후 파리에서 군사재판을 받아 가벼운 처벌을 받고, 나중에 육군참모총장에까지 진급했다고 한다. 브뤼네는 프랑스로 돌아갈 때 일본에서 그렸던 스케치들을 다 가지고 돌아갔는데, 일-프 교류사 연구자인 크리스티앙 폴락이 브뤼네의 손자 안드레를 찾아가 스케치들을 발견했다고 한다. 폴락은 1988년 브뤼네의 손자의 미망인 카트린느를 하코다테로 초대하여 에노모토의 후손들과 대면시키고 스케치 작품을 도립 하코다테 미술관에서 공개했다. 그리고 이때 공개된 스케치들을 주오코론 사[中央公論社] 사장 시마나카 호지[嶋中鵬二]가 '프랑스 사관 브뤼네의 스케치 100장'이라는 이름으로 출판했다고 한다. 이 출판된 스케치집을 시오가마 시의 문화재보호위원 오가와 스미오[小川澄夫] 씨가 보고, 미술관을 방문하여 '절의 계단'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던 스케치가 실은 시오가마 신사의 풍경을 그린 것임을 확인했다. 그리하여 2004년에 시오가마 신사 참배도 앞에 스케치가 인쇄된 전시물을 전시하게 된 것이다. 스케치는 아래와 같다.





아 이제 거의 다 왔다. 드디어 시오가마 신사 경내로 들어간다.
耿君 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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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9/03/24 19:49 | 일본에 가다 | 트랙백 | 핑백(2)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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