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다이의 밤 03 - 센다이의 밤

지난 편에 이어서

센다이 역에서 열차를 타고 다이시도 역에 도착했다. 어둑어둑한 길을 지나 도추안 유스호스텔 안에 들어섰더니, 내부는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휑한 상태였다. 뭐 도추안은 워낙에 그런 분위기니까 그러려니 하고 내 방으로 들어갔다. 방문을 열어보니, 방 한쪽에 처음 보는 낯선 배낭이 하나 놓여 있다. 앗, 전날에 주인 할아버지가 이 방에 한 명 더 들어올지도 모른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사람이 온 모양이다. 같이 묵게 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나...

센다이의 밤  03
- 센다이의 밤

耿君이 삼가 지음


히라이즈미를 비바람 속에 걸어다닌 피로를 풀기 위해 욕탕으로 들어갔다. 욕조에 몸을 담그고 개운함을 즐기고 있는데, 문득 욕탕 문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진다. 순간 나는 "아 그 분이 오셨군" 하고 생각했다. 목욕을 마치고 문을 열고 나가자 옷가지 등을 들고 있는 서양 사람 한 명과 눈이 마주쳤다. 그 서양인은 막 욕조에서 나와 옷을 입고 있지 않은 나를 보고는 얼른 고개를 돌리며 "Oh, sorry, sorry"를 연발하며 어쩔줄 몰라했다. 나는 괜찮다고 이야기하며 유유히 걸어나와 수건으로 몸을 닦고, 서양인이 민망해하지 않도록 얼른 옷을 입었다. 그 사람은 "일본의 공동 욕실은 처음 체험하는 거라 좀 놀랐다"고 말하며 머쓱해했다.

그의 이름은 마이크(Mike). 미국에서 왔다고 했다. 간단히 몇 마디 나누는데, 그 순간 욕실 바깥에서 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이크와 여행을 같이 하는 사람인가보다. 이런저런 말이 오가더니 욕탕 입구를 가린 천막 밑으로 샴푸 같은 것이 굴러들어온다. 마이크는 "저기 근데, 여기 안에 우리 말고 또 한 사람이 있어" 하고 이야기했고, 여성분은 당황한 듯 후다닥 하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는 나에게 웃으며 미안하다고 하고, 이내 옷을 훌러덩 벗기 시작했다. 나는 처음 일본식 욕조에 들어가본다는 그 사람에게 들어가서 어떤 순서로 몸을 씻는지, 욕조는 어떻게 되어 있는지 영어로 설명을 해주고 밖으로 나왔다.

방에 들어와서 짐을 정리하고 텔레비전을 보며 시간을 보내다가, 거실 쪽으로 나와보았다. 거실에 있는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자니, 머리를 수건으로 동여맨 동양인 여성이 나타났다. 아까 샴푸를 던진 그 여인인 모양이다. 미국 사람인 마이크와 함께 다니니까 미국 사람일 것으로 생각하고 영어로 말을 걸었다. 그런데 이 여성, 자신은 영어를 잘 하지 못한다고 쩔쩔매고 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일본어로 말을 거니, 깜짝 놀라며 내가 일본인이었느냐고 물어온다. 한국인이라고 하니 더더욱 놀란다. 이 여성의 이름은 니시다 에미. 꽤 젊어보였는데 나보다 나이가 좀 많은 모양이다. 내 나이를 물어보더니 그거 밖에 안 먹었냐는 느낌의 반응을 보였기 때문에.

이어서 마이크까지 목욕을 마치고 나와서 셋이서 이야기판이 펼쳐졌다. 마이크는 홈페이지 제작 등의 일을 하는 회사원으로, 이번에 장기간의 휴가를 얻어 아시아 일대를 돌며 여행을 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은 홋카이도에서 출발하여 센다이까지 내려왔는데, 내려오는 길에 열차 안에서 에미를 처음 만나서 함께 이 숙소에 왔다는 것. 내가 숙소를 미리 다 예약해놓은 것과 달리, 마이크는 현지에서 당일 오전에 바로 숙소를 알아본다고 한다. 에미는 규슈 출신의 일본인인데 프랑스인과 결혼했고, 지금은 혼자서 일본 일주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국적이 프랑스로도 되어 있기에 JR 패스의 사용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유창한 프랑스어로 이야기를 하는데, 나는 전혀 무슨 말인지 못알아들었지만, 마이크는 아주 약간은 프랑스어를 알아듣는 모양이었다.

마이크와 에미는 숙소로 오는 길에 사왔다며 와인을 한 병 꺼내더니 "파티를 열자"고 했다. 거창하지는 않았지만 조촐한 와인 파티를 가지면서 우리들은 이야기꽃을 피웠다. 도호쿠 지방에는 어떤 여행지가 좋은지, 앞으로 어디를 갈 것인지 등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각자가 겪은 웃긴 해프닝이나 재미있는 개그 에피소드 등 여러가지 주제가 만발했다. 그렇게 웃고 떠드는 사이 어느덧 11시가 가까워왔다. 11시부터는 응접실 사용이 불가능하고 각자 방으로 올라가야 했다. 에미는 2층에 있는 방에 묵게 되었는데, 뭔가 즐거운 시간이 끊기는 것이 아쉬웠던 우리는 결국 마이크와 내가 쓰는 방에 들어와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와인을 다 마시자 이번에는 자판기에 있는 맥주를 뽑아와서 맥주 파티를 벌였다. 맥주 캔이 여러 개 쌓이자, 에미는 마이크와 내가 술을 엄청 잘 마신다며 놀라워했다. 에이 뭐 이 정도 가지고.

자정을 넘긴 시각이 되자, 에미는 매우 피곤해하며 졸고 있었다. 우리는 에미에게 방으로 올라가서 자라고 했지만, 에미는 다시 잠에서 깨어나서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 모처럼만에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잠들 수는 없다나 뭐라나. 그래서 늦은 시간에도 우리들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각자 다음날의 일정을 이야기하는데, 마이크는 여기에서 하루 더 머물 예정이고, 에미는 도쿄로 간다고 했다. 나도 도쿄로 간다고 했더니 에미는 몇시 무슨 열차를 타냐고 물어왔다. 나는 바로 도쿄로 가지 않고 센다이 근교의 시오가마로 갔다가 정오 무렵에 출발할 거라고 했다. 그랬더니 에미는 다음날 내가 탈 신칸센 열차의 열차표를 사겠다며, 그때 열차 안에서 만나 같이 도쿄에 가자고 했고, 나도 그렇게 해보자고 답을 하며 내 열차 시간과 좌석 번호를 알려주었다. 어차피 나도 혼자 여행중이니까 그런 식으로 여행 파트너가 생긴다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새벽 1시를 지나면서 에미는 이후 몇 번을 꾸벅꾸벅 졸다가 깨다 하던 끝에 결국 방으로 올라갔다. 마이크와 나도 다음 아침의 활력을 위해 잠자리에 들기로 하였다. 센다이에서의 마지막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耿君 識

다음 편에 계속

by 耿君 | 2009/03/20 20:17 | 일본에 가다 | 트랙백 | 핑백(2)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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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에 도호쿠에 갈 일이 있으면 또 찾아오기로 약속했다. 아, 물론 재용이가 한국에 돌아올 때도 만나기로 했다. 모처럼만에 만난 친구와 함께 보낸 시간은 매우 즐거웠다. 耿君 識다음 편에 계속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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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편에 이어서2008년 12월 1일 오전 7시 반 쯤에 일어났다. 전날 새벽 2시 경에 잔 것 치고는 참 신통하게도 일찍 일어났다. 집에서 같으면 밍기적 거리다가 9시, 10시쯤 일어 ... more

Commented by rumic71 at 2009/03/20 22:33
뭔가 미묘한 관계...
Commented by 耿君 at 2009/03/20 23:02
저도 저 사람들을 만나고 상당히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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