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발견 in Japan 02 - 그것 참 요상하게 생긴 글자네

황금의 나라 10에 이어서

갸라노고쇼 터를 뒤로 하고 히라이즈미 역으로 가는 골목길을 걸어갔다. 비는 이제 오지 않았지만, 쓸쓸한 날씨는 여전했다. 인적이 드문 조용한 시골 골목길의 풍경이 쓸쓸함을 더해주는 것만 같아, 옷깃을 여미며 서서히 발걸음을 떼고 있었다. 문득 내가 점심을 닷코쿠노이와야에서 얻어먹은 주먹밥 하나로 때웠음이 떠오르면서, 무의식적으로 내 눈은 음식점을 찾고 있었다.

히라이즈미 역 쪽에 가까워 오면서 좀 큰 길이 나타났고, 그 큰길가에 있는 한 메밀국수집을 발견했다. 하지만 시간이 이미 점심을 먹을 때는 지났고, 또 얼마 안 있으면 저녁 약속이 있는지라, 식사는 포기하고 다시 가던 길을 재촉했다. 그런데 이 메밀국수집에서 나는 반가운 글자들을 보았다.

사소한 발견 in Japan  02
- 그것 참 요상하게 생긴 글자네

耿君이 삼가 지음


일본으로 여행을 오기 전, 나는 여행 비용을 충당할 생각으로 일본 외교문서 전산입력 작업 아르바이트를 잠시 했었다. 내가 맡았던 것은 병인양요, 신미양요 무렵의 사정을 담은 일본의 외교 관련 문서 및 기록들이었다. 19세기 중반의 기록들 중에는 읽기 쉽게 반듯한 가타카나와 한자로 적혀 있는 것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흘려쓴 초서체들과, 소위 헨타이가나[變體假名]라 불리는 요상한 가나의 이체자들이 가득한 것들이었다. 이 글자들을 알아보는 데에 무지하게 애를 먹어서 징글징글했는데, 그러는 사이 정이 들었던 건지, 메밀국수집 간판에서 그 지렁이같은 글씨들을 다시 보게 되니 반갑기 그지없었다. 무얼 보고 그리 반가웠느냐면 바로 아래 사진의 빨간 네모 속 글자들이다.
그럼 여기서 질문! 위 사진 속 메밀국수집 간판에서 빨간색 네모칸 안에 들어간 글자는 무슨 뜻일까요?





정답은 泉そば(이즈미 소바).

"아니 저 마지막 두 글자가 어떻게 해서 そば야! 글씨가 완전 다른데?" 하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바로 저 글자들이 각각 そ와 ば의 헨타이가나이다.

가나[假名]라고 하는 것은 마나[眞名], 즉 진짜 글자인 한자와 대비되는 말로, 일본어의 음절을 표기하기 위해, 한자의 자형을 변형하고, 그 글자의 음이나 뜻으로 발음을 삼는 글자인 것이다. 히라가나는 그 중에서도 한자의 초서체 글자 모양을 더욱 변형하여 만든 것이다. 그런데 한자의 수는 무지하게 많으니, 일본어의 50음에 대응될 비슷한 발음의 한자들도 많이 있었을 것이다. 오늘날 쓰이고 있는 기본적인 히라가나의 자형들은 1900년 소학교령 시행 이후 많이 쓰이면서 굳어지게 된 것이고, 이전에는 같은 발음이 나는 다양한 글자들이 여러가지로 쓰이고 있었다.

위에 나온 そ와 ば를 예로 들어보자. 일본어의 '소(so)' 발음을 나타내는 히라가나 そ는 曾자의 초서체에서 비롯되었다. 그런데 楚자도 일본어로는 그 음을 '소'라고 읽는다. 간판에 나와있는 두번째 글자는 바로 楚의 초서체 글자를 더 뒤틀어놓은 것에서 나온 글자인 것이다. ば에서 は는 波자에서 비롯되었는데, 같은 발음을 나타낼 수 있는 글자가 바로 者라고 한다. 간판 속 마지막 글자는 바로 이 者의 변형이다.

위의 간판은 오다와라 역에 갔을 때 사진으로 찍어놓은 것인데, 저 간판에도 헨타이가나가 등장한다. 전화번호 위에 있는 상호 세글자가 그것이다. 눈치챘을 것 같지만, 바로 저 글자들은 '다루마(だるま)'라고 읽는다.

た는 太에서 비롯된 글자인데, 이와 같은 음을 표현하는 多자를 변형한 것이 상호의 첫번째 글자. 두번째 글자는 る와 비슷하게 생겨서 알아보기가 쉽다. 마지막 '마'를 나타내는 글자는 滿자를 흘려쓴 것에서 나온 것이다.

헨타이가나에 대해서는 한국어 위키백과 '헨타이가나' 항목을 참조하시길 바란다. 그리고 항목 하단의 바깥고리에서 첫번째 페이지 http://www.toride.com/~yuga/moji/kana.html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헨타이가나를 비교적 쉽게 익힐 수 있으므로 추천!

耿君 識

다음 편에 계속

by 耿君 | 2009/03/10 01:56 | 일본에 가다 | 트랙백 | 핑백(3) | 덧글(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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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히라가 도망쳐온 요시쓰네를 보듬어주듯, 이국 타향에서 찾아온 관광객 한 명을 따스하게 맞이해주었다. 이제 센다이로 돌아가기 위해 JR 히라이즈미 역으로 돌아가기로 했다.耿君 識다음 편에 계속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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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소한 발견 in Japan 02에 이어서히라이즈미 역에 도착한 나는 이치노세키로 가는 열차가 언제 오나 하고 시간표를 쳐다보았다. 앗! 바로 지금이잖아! 하지만 이미 때는 늦어, 저 멀리 보이는 플 ... more

Linked at 耿君春秋 : 사소한 발견 in.. at 2009/12/12 18:19

... 것이다. 'しゅっせばし'라고 적는 게 맞을 텐데, 도대체 저 앞에 있는 志자 같이 생긴 놈은 뭐냐고 묻는 분들이 계실 것으로 안다. 저 글자는 지난 번 사소한 발견 in Japan 02에서 이야기했던 し의 헨타이가나 중 하나이다. 志 또는 志의 흘림 글자(구즈시지)를 쓰고서 이를 '시'라고 읽는 것이다.그리고 보면 'つ' ... more

Commented by 제갈교 at 2009/03/10 04:45
마치 중국어 필기체를 보는 듯이 어지럽네요...ㅠㅠ
그나저나 이름이 조금 남사스럽달까... 재밌달까... orz
Commented by 耿君 at 2009/03/10 08:29
한자로는 변체인데 일본어로 읽으니 헨타이가 되지요 ㅠㅠ
Commented by Tabipero at 2009/03/10 08:44
글중 오타가 있네요. 헨타이가나를 헨타이나가로 쓰셨어요.

http://www5a.biglobe.ne.jp/~urakami/ 여기 보면 え에 해당하는 글자가 이상한 글자로 되어 있는데(る에 밑줄친것 같은) 이것도 그런 맥락으로 봐야 하나요?
Commented by 耿君 at 2009/03/10 10:02
앗 오타 지적 감사합니다 ㅎ 수정했어요.
ゑ는 본디 わ 행의 'we'에 해당하는 글자입니다. 후대에 음가가 'e'로 바뀌면서 え와 발음상 구분이 거의 없어졌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거의 쓰지 않지만, 2차대전 이전 시기까지는 자주 쓰입니다. 비슷한 것으로는 ゐ(이)가 있습니다.
Commented by 초록불 at 2009/03/10 09:19
そ가 曾자의 초서체에서 나온 거였군요!!
Commented by 耿君 at 2009/03/10 09:58
네 그렇습니다.
Commented by passing by at 2009/03/10 10:19
삼가 질문을 좀 드리겠습니다. (굽쉰굽쉰)
1. 우리나라는 전근대 문헌이 한문이거나, 한글로 쓰여 있어도 맞춤법이 제각각이라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많은데, 일본인들은 전근대 문서를 별도 교육없이 읽을 수 있나요? 아니면 그들도 역시 따로 읽는 법을 배워야 하나요?

2. 만약에 히라가나와 한자를 섞어쓴 문장에서 한자를 초서체로 썼다면, 가나와 한자초서의 정확한 구분(또는 경계)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Commented by 耿君 at 2009/03/10 12:10
1. 아마도 따로 읽는 법을 배울 겁니다. 물론 가까운 시기의 것은 어느 정도 감으로 읽을 수 있겠습니다만, 고전 일본어의 경우는 그렇지 않겠지요.
2. 사실 과거에는 히라가나는 거의 쓰이지 않았달까요, 한자가 대부분이며 중간중간에 간혹 가나가 보이는 수준이라, 대충 감으로 구분이 가능합니다.
Commented by passing by at 2009/03/10 17:58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프랑켄 at 2009/03/10 13:08
일본어를 더 쉽게 표기하기 위해서 만든 가나라는데, 저렇게 종류가 많으면 저것들 다 익히는 것도 일이겠습니다.ㅡㅡ (뭐 이럴 땐 중앙 정부가 '앞으로 이 종류만 써라'고 정리 좀 해줘야 했었는데, 알다시피 일본은 메이지 유신 전까진 전형적 봉건 국가였으니 한가지만 익혔다간 골치아플 일이 많았겠으니)
Commented by 耿君 at 2009/03/10 14:33
중앙 정부가 '앞으로 이 종류만 써라'라고 정리해 준게 1900년의 일이지요 ㅎㅎ 한자음 읽는 방식이 여러가지인 것도 그와 비슷한 사정이겠지요.
Commented by Mizar at 2009/03/13 11:30
이제는 안쓰는 줄 알았는데 의외로 쓰고 있군요.
그런데 상호에 저런 글자를 써놓아도 일반인들이 알아 볼 수 있을까요?
Commented by 耿君 at 2009/03/13 13:24
ゑびす 맥주도 있답니다 ㅎㅎ
다들 잘 알아보는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Mizar at 2009/03/13 13:35
'에비스'야 굉장히 유명하지 않습니까? ^^;;
그런데 ゑ도 헨타이 가나의 부류에 드나요?
Commented by 耿君 at 2009/03/13 13:38
위에서 Tabipero님의 댓글에 대해 답글로 이야기했지만,
ゑ는 え와 다른 글자로 출발하였기 때문에 え의 헨타이가나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Commented by Mizar at 2009/03/13 13:55
아, 제 질문의 의미는..^^;
위의 포스트에서 '상호에 헨타이 가나가 사용되고 있는 경우가 일반인들이 쉽게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일반적인 상황이냐?'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ゑ에 대한 언급은 굳이 위의 물음에 대한 덧글로 ゑびす라는 용례를 들어주셔서 한 이야기고요.
그런데 제가 알기로도 'ゑ는 헨타이 가나의 부류가 아닌데 굳이 그런 예를 들어주셨을까?' 해서 말이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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