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의 나라 09 - 야나기노고쇼

지난 편에 이어서

히라이즈미는 오슈 후지와라 가문의 번영과 함께 교토와 맞먹는 화려한 도시로 발달하였지만, 1189년 오슈 후지와라 가문이 멸망함에 따라 활력을 잃게 되었고, 결국 시간의 흐름 속에 수많은 불당과 탑들, 건물들은 사라져갔으며, 황량한 벌판과 몇몇 건물들만이 남아 옛 영화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을 뿐이었다. 오슈 후지와라 가문의 정청도 이미 사라졌으며, 사람들 사이에서는 기타카미 강이 범람하여 그 정청 유적이 강 밑바닥으로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하지만 1988년부터 6년간, 기타카미 강 유역 지대에서 긴급 발굴조사가 이루어짐에 따라, 땅 속에서 잠들어 있던 12세기의 거대한 유적이 모습을 드러냈다. 해자, 교각, 건물, 연못 등의 터가 차례차례 발굴되었고, 사람들은 이곳을 '야나기노고쇼[柳之御所] 유적'이라고 불렀다. 야나기노고쇼, 즉 '버드나무 정청'은 오슈 후지와라 가문의 정청 터로 유력시되었다.

황금의 나라  09
- 야나기노고쇼

耿君이 삼가 지음


다카다치를 나선 나는 이제 다음 목적지인 야나기노고쇼로 향했다. 길가에는 야나기노고쇼 유적과 전시관으로 가는 길을 가리켜주는 이정표가 있어 길을 찾기 쉬웠다.
한참을 걸어가니 이러한 황량한 들판이 나온다. 예전에는 으리으리한 건물들로 가득 찼을 법한데 이제 그런 자취를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그냥 한적한 시골 동네일 뿐이구나.
서서히 공사 현장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1998년부터 유적 정비, 활용을 목적으로 한 발굴조사가 재개되었으며, 지금도 유적 정비 사업이 이루어지고 있다는데, 아마도 그 현장인 모양이다.
과연 길가에 '야나기노고쇼 유적 정비'라는 말이 적힌 간이 사무소가 하나 세워져 있었다. 보강 공사 및 광장 조성을 하는 모양이었다.
야나기노고쇼 전시관에 가까이 갈 수록 유적 공사 현장은 더욱 본격적인 모양새를 갖추고 있었다. 몇 년 뒤에 다시 찾아오면 깔끔하게 정비된, 옛 정청의 해자와 벽 등이 복원된 고쇼 터를 보게 될 것 같다.
사실 이 곳을 지나면서 정말 여기가 야나기노고쇼 유적이 맞나 긴가민가 했는데, 위 사진 속에 보이는 '유적기준점' 표식을 보고서야 이 일대가 야나기노고쇼가 맞음을 확인했다. 야나기노고쇼는 히라이즈미 정 교육위원회가 아닌 이와테 현 교육위원회의 주관으로 발굴 및 정비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아 특히 중요시되는 것 같았다.
아 드디어 150m만 더 가면 야나기노고쇼 자료관이 나온다. 그냥 야나기노고쇼 터만 봐서는 아는 게 없는 나로서는 뭐가 뭔지 이해를 할 수 없기 때문에, 각종 유물이 전시되어 있고 설명이 가득한 자료관으로 가야 한다.
자료관 쪽으로 가는 길에는 신작로가 뚫려 있어서 히라이즈미 바깥으로 나가는 큰 도로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길가에는 위 사진과 같이 유적 정비 공사가 한참 진행되고 있었다.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포크레인 등이 움직이고 작업 인부들이 나와서 일을 하고 있었다. 벌써부터 일부 지점에는 유적 안내판 등을 세워놓았는데, 나중에 다시 한 번 와서 정비된 모습을 구경하고 싶어졌다. 2010년 경에 잠정 공개 예정이라고 한다.
드디어 도착! 야나기노고쇼 자료관. 입장료 무료라는 것이 참으로 반갑다. 입구에서 신발을 벗고 슬리퍼로 갈아신은 다음 내부 전시실로 들어갔다. 자료관 내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 없어서, 그냥 눈으로 보고 머릿속에 담아두는 것으로 만족했다.

야나기노고쇼 유적에서 발굴된 유물들 중에는 꽤 고급스러운 도자기들이 많이 나왔다. 중국산 백자 사이호(四耳壺)와 황유갈채(黃釉褐彩) 사이호, 중국 경덕진에서 만들어진 청백자 사발 등과 일본의 유수 도자기 산지인 도코나메[常滑]와 아쓰미[渥美] 등지에서 생산된 도자기 등이 그것인데, 이런 도자기들을 통해 오슈 후지와라 가문의 문화와 경제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를 추측해볼 수 있다.

국가 지정사적이 된 야나기노고쇼 유적은 『아즈마카가미』에 나오는 오슈 후지와라 가문의 정청 '히라이즈미 관[平泉館]'으로 추정된다. 유적 조사에 따르면, 이 유적은 3대 히데히라 시절에 크게 절토(切土)와 성토(盛土)의 조성공사를 거쳤고, 그 이전에는 2대 모토히라와 1대 기요히라의 정청 건축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다만, 1대 기요히라 때 이 정청을 건축하면서 대대적인 토대 구축 공사를 하면서 지반을 크게 갈아엎었기 때문인지, 아쉽게도 기요히라 이전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야나기노고쇼 자료관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본 유적, 유물 중 한두가지만을 들자면 그것은 바로 우물 유적이랑 변소 유적이었다. 우물 유적에 있던 거대한 나무 틀 등이 그대로 자료관에 옮겨져 전시되어 있어서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변소 유적은 12세기에 만들어진, 퍼내는 방식의 재래식 변소로, 이 안에서 주기[ちゅう木]라는 이름의 가늘고 긴 막대기가 다량 발견되었는데, 오늘날의 화장지에 해당하는 것이라 보면 된다. 이런 유물들을 통해서 조사진은 12세기 당시의 기생충을 검출해냈고, 이로써 당시 사람들의 뱃속에 어떤 기생충이 있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자료관을 쭉 둘러보고 밖으로 나오니 시간은 오후 3시로 다가가고 있었다.

耿君 識

다음 편에 계속

* 야나기노고쇼 자료관[柳之御所資料館]


찾아가는 길: 히라이즈미 역에서 도보 10분
주소: 岩手県平泉町平泉字伽羅楽108-1
전화번호: 0191-34-1001
안내 사이트: http://hiraizumi.or.jp/sightseeing/yanaginogosho/index.html

입장료: 무료
휴일: 매주 월요일, 공휴일 이튿날, 연말연시, 관내 정비일
개관시간: 09:00~16:30

by 耿君 | 2009/03/08 12:44 | 일본에 가다 | 트랙백 | 핑백(2)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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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이다. 그리고 그의 죽음 이후 82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자리잡고 있는 요시쓰네는, 과연 아직도 살아있는 것만 같다.耿君 識다음 편에 계속* 다카다치 기케이도[高館義經堂]찾아가는 길: 히라이즈미 역에서 도보 20분전화번호: 0191-46-3300홈페이지: http://www.motsuji.or.jp/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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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편에 이어서히라이즈미에서의 시간도 이제 서서히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었다. 야나기노고쇼를 나온 나는 이어서 무료코인[無量光院] 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무료코인은 후지와라노 히데히라가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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