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의 나라 08 - 요시쓰네는 살아있다?

지난 편에 이어서

앞서서 닷코쿠노이와야 비사문당 앞마당에 라이 미키사부로[賴三樹三郞]의 시비가 세워져 있던 것을 소개했는데, 다카다치 기케이도 경내에도 라이 미키사부로가 히라이즈미를 방문했을 때 남겼다는 시구가 적힌 비석이 또 세워져 있었다. 이번에는 닷코쿠노이와야에 있는 것과는 다른 내용의 한시이다.

황금의 나라  08
- 요시쓰네는 살아있다?

耿君이 삼가 지음


이것이 바로 라이 미키사부로의 시비. 뭐라고 길게 적혀있긴 한데 당최 뭔 말인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옆에 있는 안내문의 도움을 받고자 했지만, 안내문에도 한시 전문이 실려있지는 않았고, 대신 한시의 요약문이 적혀 있었다.
위 사진이 바로 라이 미키사부로 시비의 안내문. 라이 미키사부로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지난 포스팅에서 이미 다루었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시와 관련된 안내문 둘째 문단 이하를 번역하여 올리고자 한다.
(전략)
이 시는, 고카[弘化] 3년(1846) 히라이즈미를 방문했을 때, '히라이즈미 일몰'의 감동을 읊은 것으로, 또 이 비석은 22세 미키사부로의 웅혼한 필체가 남겨진 것이기도 하다. 미키사부로는 나중에 안세이[安政]의 대옥(안세이 5년, 1858)에서 붙잡혀, 이듬해인 6년에 35세의 나이로 고즈캇파라 형장[小塚原刑場]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 시의 요약은 다음과 같다.
'작은 배를 만들어 기타카미 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후지와라 전성기때부터의 600년은 하룻밤의 꿈 사이다. 판관관(判官館)과 고로모가와의 모습, 요시쓰네와 요리토모, 히라이즈미와 가마쿠라[鎌倉]의 슬픈 사이. 그리고 이제 3대 100년의 풍토 산천(豊土山川)이 마구 황폐해져, 다만 요시쓰네 주종(主從)의 지조만이 슬프게 되살아난다. 초목과 교활한 토끼마저 가마쿠라로 따라가는 역사의 부침의 덧없음. 저녁해의 그림자는 옛 탑 주변에 그늘지며 한층 더 쓸쓸하다.'
마지막에 붙은 '기케이도 관리 모쓰지'라는 말을 통해 이 곳이 모쓰지 관할임을 다시 알 수 있었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기케이도를 구경해보자. 계단이 이어진 끝에 자리잡은 건물이 바로 다카다치 기케이도이다.
기케이도 내부에는 미나모토노 요시쓰네의 목조상이 모셔져 있다. 당내에 모셔져 있는 요시쓰네 상의 얼굴을 보니, 내가 평소에 상상 속에서 그리고 있었던 미소년스러운 얼굴과는 다소 차이가 있어서 약간 당황했다. 이 목조상은 1683년에 센다이 번주 다테 쓰나무라가 기케이도를 만들 때 조각하여 안치한 것으로 추정되며, 목조상의 제작 기법 등을 통해 제작 시기가 꽤 오래된 것임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이 목조상은 머리에는 상투가 표현되어 있으며, 그 머리에다가 따로 조각된 투구를 씌운 것이 특징이라고 하는데, 과연 그런지 확인을 해볼 수는 없고 그냥 바라만 볼 뿐. 형 요리토모에게 쫓기다가 마침내 이 땅에서 비극적인 최후를 마치게 된 요시쓰네의 이야기를 생각하며 목조상 앞에서 합장을 했다.
기케이도 옆에는 이와 같은 자료관이 세워져 있다. 비록 전시 규모는 매우 작지만, 요시쓰네의 일생과 그의 주변인물들에 대한 친절한 설명이 적혀 있어서 볼만하다. 오슈 후지와라 일가와 미나모토노 요리토모, 사토고젠, 무사시보 벤케이 외에도 요시쓰네를 수행하다 목숨을 잃은 충성스러운 심복 사토 쓰구노부[佐藤繼信], 다다노부[忠信] 형제나, 애첩 시즈카고젠[靜御前] 등에 대해서도 소개되어 있다.

시즈카는 시라뵤시[白拍子], 즉 가무를 연기하는 남장 유녀였다. 요시쓰네의 애첩인 시즈카는 요리토모와 대립하고 있던 요시쓰네를 따라 교토를 떠나서 규슈로 향한 인물 중 하나였다. 하지만 풍랑으로 인해 조난을 당하고, 결국 요시쓰네와 시즈카는 요시노에서 안타까운 작별을 하게 되었다. 시즈카는 그 길로 교토로 향하였는데, 시즈카의 종자가 짐을 빼앗아 달아나면서 그녀는 산중에서 길을 잃고 헤매게 되었다. 그러던 중 산승(山僧)에게 붙잡힌 시즈카는 호조 도키마사[北條時政]에게 넘겨진 뒤, 1186년 3월에 가마쿠라로 보내졌다고 한다. 그해 4월, 시즈카는 요리토모로부터 쓰루가오카 하치만구[鶴岡八幡宮]에서 시라뵤시 가무를 공연할 것을 명령받았다. 그러자 시즈카는 그 공연 자리에서 요시쓰네를 사모하는 내용의 노래를 불렀다. 요리토모는 격분했지만, 요리토모의 아내 호조 마사코[北條政子]가 그를 제지하며 이렇게 말했다. "제가 저 분의 입장이라도 저런 노래를 부르겠지요"
그렇게 많은 옛 이야기들을 떠 안은 다카다치를 옆에 끼고서 기타카미 강은 여전히 도도하게 흐르고 있었다.
다카다치를 나와보니 '전설 요시쓰네 북행 코스'라는 것이 소개되어 있다. 이 코스는 요시쓰네가 사실은 히라이즈미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아서 홋카이도 방면으로 달아났다는 설에 입각한 것이다. 아래는 위 사진 속 안내문의 번역이다.

전설 요시쓰네 북행 코스

다카다치

비극의 명장으로 세상에 알려진 미나모토 구로 호간 요시쓰네[源九郞判官義經]는 형 요리모토에게 쫓겨, 분지[文治] 5년(1189) 4월, 히라이즈미의 다카다치에서 31세를 일기로 자결했지만, 짧지만 화려했던 그의 생애를 생각하며, "요시쓰네는 그보다 1년 전에 몰래 히라이즈미를 빠져나와, 북쪽을 향해 여행을 떠났다"는 전설을 만들어낸 것이다.
세상에서 말하는 '판관 편들기'일 것이다.
그 전설에는, "분지 5년에, 이 관(館)에서 자결한 것은, 요시쓰네의 가게무샤[影武者]인 스기노메 다로 유키노부[杉目太郞行信]였고 요시쓰네는 그 1년 전에 벤케이 등을 데리고 관을 나와, 다바시네 산을 넘어 북쪽으로의 긴 여행을 떠난 것이다" 라고 전해지고 있다. (사사키 가쓰미[佐々木勝三] 저 『요시쓰네는 살아있었다』에서) 이 '전설 요시쓰네 북행 코스'는, 이러한 전설이 남아있는 지점 몇 군데를 연결한 것으로, 이 다카다치가 기점입니다.

이와테 현 관광연맹

요시쓰네의 굵고 짧은 화려했던 삶, 그리고 그의 안타까운 죽음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의 불사 전설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전설에 나오는 가게무샤와 관련된 의문이 바로 앞서 '오슈 후지와라 가문의 몰락' 포스팅에서 이야기했던, 문드러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는 요시쓰네의 수급에 관한 이야기이다. 어쨌든 이 불사 전설이 점차 확장되어서, 요시쓰네가 죽지 않고 쓰가루까지 가서 하코다테로 건너갔다는 설화가 만들어졌고, 홋카이도 일대에는 요시쓰네 전설이 연관지어지는 장소들이 여럿 등장하게 되어, 이러한 전설을 바탕으로 1799년, 지금의 홋카이도 피라토리 지역에 요시쓰네 신사까지 세워지기도 한다. 예전에 <도남천력기> 하코다테를 걸어다니다 편에서 소개했던 후나다마 신사도, 요시쓰네가 탄 배가 난파될 위기에 처했을 때 후나타마 다이묘진이 도와주었다는 데서 생겨났다는 전설이 전해지지만, 사실 이는 후대에 만들어진 이야기이다.

요시쓰네가 홋카이도에 도착한 것에 한 발 더 나아가서, 이번에는 아이누와 요시쓰네를 결부시키는 시도도 등장한다. 요시쓰네의 기습 공격 등 군사적 재능이 아이누 사냥꾼들의 사냥 기술과 닮아있다든지, 아이누 신화에 나오는 인간의 시조신 '오키쿠루미'가 사실은 홋카이도로 건너간 요시쓰네였다는 등의 이야기도 전한다. 이런 이야기들은 역시나 후대에 지어진 이야기일 뿐이지만, 우리 판관의 전설은 이것이 다가 아니다. 요시쓰네가 홋카이도를 지나 대륙으로 건너갔다는 이른바 '요시쓰네 대륙 도항설'도 생겨났다.

또한, 에도 시대에는 청의 건륭제가 '짐의 선조의 이름은 원(源)이고, 이름은 의경(義經)이라고 한다. 그 조상은 청화(淸和)에서 왔기에 국호를 청(淸)이라 하였다'고 말했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또 그 무렵 사와다 겐나이[澤田源內]라는 사람이 『금사별본(金史別本)』이라는 중국 서적을 번역, 소개하였는데, 그 안에는 12세기 금나라의 장군 중에 원의경이라는 자가 있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하지만 중국에는 금사별본이라는 책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사와다 겐나이는 가짜 계보도 만들기의 달인이었기 때문에, 이 책의 내용은 거짓으로 판명되었다. 물론 건륭제에 관한 소문도 진실은 아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유명한 '요시쓰네=칭기스 칸 설'까지 등장하게 된다. 1823년 일본에 왔던 독일인 의사 시볼트(Siebold)1)가 본격 일본 연구서 『일본(Nippon)』에서 요시쓰네 대륙 도항설을 소개하면서, 요시쓰네를 부르던 '가미[守](kami)'라는 이름이 몽골의 '칸'으로 된 것이 아닌가 하고 고찰했다. 지금으로 봐서는 매우 당혹스러운 추리이지만, 1878년부터 런던에 부임하여 캠브리지 대학에 유학중이던 외교관 스에마쓰 겐초[末松謙澄]는 시볼트의 책을 읽고, 바로 이 내용을 기반으로 하여 요시쓰네=칭기스 칸 설을 대학 졸업논문으로 발표했다. 당시 영국의 일본 붐을 일으켰던 스에마쓰의 논문은 1885년에 번역되어 일본에서도 소개되었다.

목사였던 오야베 젠이치로[小谷部全一郞]는 이 논의를 더욱 발전시켰고, 1919년 시베리아 방면으로 진출한 일본군의 통역을 담당하면서 요시쓰네=칭기스 칸의 흔적을 찾아다닌 끝에, 1923년, 『칭기스 칸은 미나모토노 요시쓰네다』라는 책을 출판하여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오야베 덕분에(?) 요시쓰네=칭기스 칸이라는 등식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으나, 1924년 『중앙사단(中央史壇)』임시증간호 「칭기스 칸은 미나모토노 요시쓰네가 아니다」에서 역사학, 인류학, 고고학 등 학문 각계의 인사들이 맹렬한 반론을 제기하였다. 요시쓰네=칭기스 칸 설은 이때 본격적으로 등장한 이래로, 아직까지도 몇몇 '연구자'들에 의해 여전히 제기되고 있다. 사족 삼아 덧붙이자면, 오야베는 말년에 일본-유대인 동조론까지 주장했다고 한다.


요시쓰네는 비록 장렬하게 죽었지만, 그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긴 많은 사람들의 마음과 머리 속에는 요시쓰네가 살아남아 있었다. 그로 인하여 각종 설화와 망상이 생겨나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의 죽음 이후 82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자리잡고 있는 요시쓰네는, 과연 아직도 살아있는 것만 같다.

耿君 識

다음 편에 계속

* 다카다치 기케이도[高館義經堂]

찾아가는 길: 히라이즈미 역에서 도보 20분
전화번호: 0191-46-3300
홈페이지: http://www.motsuji.or.jp/gikeido

입장료: 200엔
휴일: 연중무휴
관람시간: 08:30~17:00 (4/5~11/4)
              08:30~16:30 (11/5~4/4)


== 주석 ==
1) Siebold는 보통 '지볼트'라고 읽지만, 시볼트 본인은 자신의 출신지인 남독일의 발음에 따라 자기 이름을 '시볼트'라고 발음했다고 한다.

by 耿君 | 2009/03/05 20:33 | 일본에 가다 | 트랙백 | 핑백(2) | 덧글(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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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카미 강이었다. 기타카미 강의 거슬러올라간 쪽에 고로모가와도 있으며, 그쪽이 고로모가와 옛 전쟁터 자리이다. 강 건너 동쪽에 다바시네 산이 웅장하게 자리잡고 있다. 耿君 識다음 편에 계속 ... more

Linked at 耿君春秋 : 황금의 나라 09.. at 2009/03/08 12:46

... 지난 편에 이어서히라이즈미는 오슈 후지와라 가문의 번영과 함께 교토와 맞먹는 화려한 도시로 발달하였지만, 1189년 오슈 후지와라 가문이 멸망함에 따라 활력을 잃게 되었고, 결국 시간의 ... more

Commented by Mizar at 2009/03/05 21:12
'요시쓰네=칭기스칸' 이야기가 가장 먼저 나온 것인줄 알았는데 다른 떡밥이 더 있었군요.
일본 내에서는 '기병의 천재'라는 식으로 이야기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칭기스칸에 비할 정도라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지만요..
Commented by 耿君 at 2009/03/05 22:27
요시쓰네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만큼 떡밥도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ㅋ
Commented by 쇼가센세 at 2009/03/05 23:34
일본-유대 동조 떡밥은 오야베가 뿌린 것이었군요.
Commented by 耿君 at 2009/03/06 09:15
그렇다고 하네요~
Commented by ghistory at 2009/03/06 00:00
시볼트→지볼트입니다.
Commented by 耿君 at 2009/03/06 09:19
제가 ghistory님이 분명히 이렇게 지적해오실 줄 알고 글 맨 하단에 주석을 미리 달아놓았는데, 못보신 모양이군요!!! 주석 참조하세요.
Commented by ghistory at 2009/03/06 11:54
앗 나의 굴욕.
Commented by ghistory at 2009/03/06 00:01
건륭제: 최근에 나온『대청제국』(휴머니스트)에는 건륭제가 사실은 바뀌치기된 한인 아이라는 소문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는 한족 엘리트들의 반만사상을 반영하고 있지요. 저 소문도 그런 사고방식의 연장선상에서 유행한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耿君 at 2009/03/06 09:15
그냥 일본인의 작품일 가능성이 높아서, 그런 쪽과 연결시키기에는 ㅋ
Commented by 진성당거사 at 2009/03/06 22:51
경군님이 올리신 일련의 요시쓰네 포스팅.........정말 하나의 서사시같았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Commented by 耿君 at 2009/03/07 10:45
아유 원 별 말씀을. 잘 읽으셨다니 다행입니다.
Commented by 迪倫 at 2009/03/07 14:26
요시쓰네-징기스칸은 만화로도 종종 나오던데..글 잘읽었습니다. 일본 사람들의 무의식에는 의외로 열도에 갇혀있다고 갑갑해하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사족 일본-유대인설은 좀 재미있어 하던 황당스토리라, 사족에 뒷다리를 다시 붙입니다.
http://www.biblemysteries.com/library/tribesjapan.htm 를 한번 보시고 웃으시라고...^^
Commented by 진성당거사 at 2009/03/07 20:59
한국인들이 12지파의 후손이라는 책도 두 권 있습니다. 하나는 1870년대에, 다른 하나는 1950년대에 출판되었습니다.
Commented by 耿君 at 2009/03/07 23:14
하하 그런 식으로 생각해볼 수도 있으려나요 ㅎㅎ
일본-유대 동조설은 참 난감합니다 ㅋㅋ
Commented by leopord at 2009/03/09 20:11
역시 목숨보다 긴 것은 이야기겠지요.ㅎ
Commented by 耿君 at 2009/03/09 21:13
그러게나 말입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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