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3월 01일
황금의 나라 07 - 다카다치, 꿈의 자취
지난 편에 이어서
주손지를 나온 나는 이어서 다카다치[高館]로 향했다. 다카다치는 요시쓰네가 최후를 맞이한 관(館)이 있던 곳으로, 지금 그 자리에는 요시쓰네를 기리는 기케이도[義經堂]가 세워져 있으며, 마쓰오 바쇼도 이 장소를 찾아와 하이쿠 한 편을 남겼는데, 그 하이쿠가 모쓰지 편에서 소개하였던 '여름 풀이여 / 먼 옛날 병사들의 / 꿈의 자취라(夏草や 兵どもが 夢の跡)'이다. 모쓰지에도 하이쿠 시비가 있기는 하지만 원산지는 바로 여기 다카다치인 것이다.
황금의 나라 07
- 다카다치, 꿈의 자취
耿君이 삼가 지음
지도를 살펴보고 경로를 정한 나는 주손지 입구에서 나와 길을 건넜다. 그리고 조금 걸어서 내려가다가 왼쪽으로 갈라져 있는 조금은 좁은 길로 빠져서 들어갔다.
그러자 내 눈 앞에는 철도 건널목이 등장했다. 이 철도는 JR 열차들이 지나가는 철로이다.
철로에 서면 문득 이 철로를 따라 걷고 싶은 생각이 든다. 드라마 같은 걸 많이 본 폐해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철로를 쭉 따라가면 히라이즈미 역이 나올 터였다. 열차가 거의 1시간 간격으로 다니는 노선인지라 느닷없이 열차가 달려오거나 하는 일은 없겠지만, 여기서 한없이 지체할 이유도 없었다. 얼른 건널목을 지나 기케이도로 직행!
조금 더 걸어가니, '다카다치 기케이도 입구'라는 간판이 보인다.
기케이도로 들어가는 길가에는 위 사진에 보이는 탑이 하나 세워져 있다. 이른바 '왕고 양군 전사자 공양탑(往古兩軍戰死者供養塔)'. 아마도 히라이즈미에 살거나 이곳을 방문하던 사람들에게 이 땅은 치열한 전쟁의 땅으로 기억되었던 것 같다. 특히 피아를 불문하고 양측 전사자 모든 혼령들을 위로하려는 공양탑 내지 위령비 등이 많은 것이 인상적이다.
드디어 기케이도 앞이다. 계단을 올라가면 기케이도로 바로 이어지는데, 그 계단 옆에 조그마한 사무실이 하나 마련되어 있다. 그곳에서 입장권을 사서 기케이도에 들어가는 것이지만, 사실 돈을 안 내려고 마음 먹으면 사무실 몰래 올라가도 상관없을 정도로, 입장문이라든지 별다른 시설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입장료가 있는 곳이니 돈을 내고 가야지 하는 생각에 사무실에 다가가니, 안에 있던 승려 차림의 직원분이 어서오라고 말씀하신다. 참고로 말하면 기케이도는 모쓰지에서 관리하고 있다. 표값은 200엔.
들어가기 전에 다카다치 기케이도에 대한 안내문을 읽어보았다. 아래에 그 번역의 일부를 옮겨본다.
계단을 올라가니 앞에 이런 이정표가 나온다. 왼쪽으로 가면 기케이도, 오른쪽으로 가면 바쇼의 하이쿠 비석이 있다고 한다. 메인 요리(?)는 나중에 먹기로 하고, 일단 애피타이저 삼아 바쇼의 하이쿠 비를 보기로 했다. Turn right!
이것이 바로 마쓰오 바쇼의 비. '여름 풀이여 / 먼 옛날 병사들의 / 꿈의 자취라(夏草や 兵どもが 夢の跡)'라는 시구가 바쇼의 친필로 적혀 있다. 바쇼가 히라이즈미에 찾아온 것은 1689년 음력 5월 13일의 일이었다고 한다. 다카다치에 올라, 눈앞에 펼쳐진 여름의 푸른 초목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바라보던 바쇼는, 오슈 후지와라 가문의 영광과 이 땅에서 쓰러진 요시쓰네를 그리며 위의 하이쿠를 지었다. '나라는 망했지만 산천은 있고, 성에 봄이 와서 풀이 푸른' 광경을 보고 눈물짓던 바쇼가 남긴 유명한 시구이다.
여름이라 초목이 우거지지는 않았지만 다카다치의 눈앞에 펼쳐진 자연은 역시 여전히 그때 그대로일 것이었다. 눈앞에 흐르는 강물은 기타카미 강일 것이고, 저 멀리 보이는 산들은 오슈의 산맥들일 것이었다.
하지만 히라이즈미는 강에 인접해 있는 마을인지라 홍수 피해가 예상이 되었으며, 그와 더불어서 도로 개발에 대한 요구도 존재하였다. 이에 대하여 풍광도 보존하고 도로도 만들면서 유적지를 보호하기 위해, 히라이즈미를 지나는 기타카미 강에 제방을 쌓고, 바이패스(by-pass) 사업을 벌여 우회 도로를 건설하였다고 한다. 문화 유산을 보호하려는 노력이 엿보이는 한 단면이다.
난간에는 다카다치 전망 설명도도 붙어 있었다. 과연 앞에 흐르는 강은 기타카미 강이었다. 기타카미 강의 거슬러올라간 쪽에 고로모가와도 있으며, 그쪽이 고로모가와 옛 전쟁터 자리이다. 강 건너 동쪽에 다바시네 산이 웅장하게 자리잡고 있다.
다음 편에 계속
주손지를 나온 나는 이어서 다카다치[高館]로 향했다. 다카다치는 요시쓰네가 최후를 맞이한 관(館)이 있던 곳으로, 지금 그 자리에는 요시쓰네를 기리는 기케이도[義經堂]가 세워져 있으며, 마쓰오 바쇼도 이 장소를 찾아와 하이쿠 한 편을 남겼는데, 그 하이쿠가 모쓰지 편에서 소개하였던 '여름 풀이여 / 먼 옛날 병사들의 / 꿈의 자취라(夏草や 兵どもが 夢の跡)'이다. 모쓰지에도 하이쿠 시비가 있기는 하지만 원산지는 바로 여기 다카다치인 것이다.
황금의 나라 07
- 다카다치, 꿈의 자취
耿君이 삼가 지음







여기 다카다치[高館]는, 요시쓰네가 최후를 마친 땅으로 전해져 왔다.이제 본격적으로 기케이도 관광에 들어가보자. 때는 대략 2시 10분 경이었다.
후지와라노 히데히라는, 형 요리토모에게 쫓겨 도망쳐 온 요시쓰네를 히라이즈미에 숨겨준다. 하지만 히데히라 사후, 요리토모의 압력에 못이긴 4대 야스히라는, 아버지의 유명을 어기고 요시쓰네를 습격했다. 분지[文治] 5년(1189) 윤4월 30일, 일대의 영웅 요시쓰네는 여기에서 처자를 길동무 삼아 자결하였다.
당시 요시쓰네는 31세.
『아즈마카가미[吾妻鏡]』에 의하면, 요시쓰네는 '고로모가와 관[衣川館]'에 체재하고 있던 중에 습격당했다. 지금은 판관관(判官館)이라고도 불리는 이 땅은, '고로모가와 관'이었던 것일까.
여기에는 덴나[天和] 3년(1683) 다테 쓰나무라[伊達綱村]가 건립한 기케이도[義經堂]가 있고, 갑주 차림의 요시쓰네 상이 모셔져 있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제일이며, 서쪽에 멀리 오슈 산맥[奧州山脈], 아래로 기타카미 강[北上川]을 사이에 두고 동쪽으로 다바시네[束稻]의 산줄기들이 보인다.
(하략)





耿君 識
다음 편에 계속
# by | 2009/03/01 23:35 | 일본에 가다 | 트랙백 | 핑백(2)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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