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의 나라 05 - 황금의 나라

지난 편에 이어서

찬형장을 나오면 바로 옆에 곤지키도가 있다. 금색당(金色堂)이라는 이름 그대로 온 건물이 다 금이 입혀져 있다는 이 화려한 건물은 1124년에 축조된 것으로, 주손지가 후지와라노 기요히라에 의해 중건될 무렵에 세워진 건물 중 유일하게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것이다. 곤지키도에 가까이 갈수록 과연 곤지키도는 어떤 건물일까, 어떻게 금으로 된 건물이 금박을 도둑맞거나 불에 타거나 하지 않고 지금까지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일까 하는 의문을 떠올리게 되었다.

주손지 곤지키도는 오슈 후지와라 가문의 극락정토 희망을 그대로 실현한 듯한 빛나는 건물로 유명하다고 한다. 그래서 곤지키도가 오슈 후지와라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곤지키도에는 오슈 후지와라 가문의 역대 당주들이 잠들어 있기 때문이다.

황금의 나라  05
- 황금의 나라

耿君이 삼가 지음


비가 무지하게 내리는 오후, 나는 곤지키도 앞에 섰다. 왼쪽에 서 있는 긴 팻말에 적혀 있는 한자가 金色堂이라는데, 堂자는 정말 그냥 보면 못알아볼 것 같다. 그런데 곤지키도는 온통 금으로 된 건물이라고 하는데 저 앞에 있는 건물에서는 전혀 금빛을 찾아볼 수 없으니 이상하지 않은가? 저 건물은 복당(覆堂)이라 하여, 금으로 되어 있는 귀중한 건물인 곤지키도를 비바람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건물 위에 덧씌워 지은 것이다. 저 안에 곤지키도의 본체가 있다.
과연 유명한 곤지키도라 사람들이 입구에 몰려 있다. 안에 환한 불빛이 보이는데, 그게 마치 금빛인 것 같다. 얼른 안으로 들어가보았다.
(사진 출처: 주손지 팸플릿에서 스캔함)

내부 사진을 찍을 수는 없었지만, 팸플릿에 곤지키도 내부의 사진이 있길래 여기에 옮겨본다. 곤지키도는 정말 거짓말 안하고 건물 전체가 금과 나전세공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기둥이란 기둥, 바닥이란 바닥은 다 금, 금이었다. 환상적이었다. 태어나서 그렇게 금을 떡칠하다시피 한 멋진 건물은 처음 봤다. 물론 규모가 그렇게 큰 건물은 아니지만, 정말이지 극락정토가 있다면 이런 곳일까 싶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가운데 있는 본존불이 아미타여래, 그리고 그 앞에 있는 양쪽 두 개의 불상이 관음보살과 세지보살(勢至菩薩), 좌우에는 여섯 좌의 지장보살, 제일 앞줄에는 지국천왕과 증장천왕이 수호신으로 세워져 있다. 이런 수미단이 가운데에 하나 양쪽에 하나씩 해서 세 개나 있다. 내가 갔을 때에는 도호쿠 역사 박물관의 전시를 위해 오른쪽 수미단의 불상이 출장을 가있는 상태였지만, 그렇다 해도 화려함은 결코 손색이 없었다.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곤지키도를 바라보고 있자니, 실내에서는 곤지키도에 대한 자세한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안내방송이 두어번 반복되었지만 나는 계속 그 방송을 들으면서 곤지키도의 아름다움을 감상했다.

앞서서 이 곤지키도에는 오슈 후지와라 가문의 당주 네 명이 잠들어있다고 했는데, 그들은 바로 저 수미단의 아래 기단부에 모셔져 있다. 중앙 수미단에는 초대 당주 후지와라노 기요히라가, 왼쪽에는 2대 모토히라가, 오른쪽에는 3대 히데히라가 잠들어 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의 머리가 히데히라와 함께 모셔져 있다. 바로 마지막 4대 당주 야스히라의 머리이다. 원래 이 수급은 야스히라의 동생으로 반역을 꾀하다 죽은 다다히라[忠衡]의 것이라고 알려져 있었으나, 현대에 들어서 곤지키도에 모셔진 당주 세 명의 미이라와 수급을 조사하면서, 수급에 대못이 박힌 흔적을 발견하여 이것이 대못에 박혀 효수되었던 야스히라의 머리임이 밝혀졌다. 비록 가문은 멸망하고 야스히라는 목숨을 잃었지만, 그 수급만큼은 아버지와 할아버지, 그리고 그 할아버지의 곁으로 돌아와 영원한 안식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이 곤지키도라는 건물은 오슈 후지와라 가문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그런 건물을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그대로 놓아두었던 것은 왜일까? 오랫동안 자신을 포함한 겐지 일가를 괴롭혀오던, 수미단 아래에 모셔진 네 당주의 시신에 해코지라도 했을 법한데, 요리토모는 그러지 않았다. 화려한 곤지키도의 금빛 모습에 반했거나, 극락정토를 꿈꾼 이들의 마음에 감화되었을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이렇게 훌륭한 건축물을 남기고 또 이 땅을 4대에 걸쳐 지배했던 오슈 후지와라 가문에 대한 예를 갖춘 것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일본을 가시는 분들 중 혹 히라이즈미를 들르실 분들이 있다면 주손지 곤지키도를 방문해보시길 권해본다.
곤지키도 옆에는 마쓰오 바쇼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 마쓰오 바쇼는 『오쿠노 호소미치』에도 나오지만 도호쿠 지방을 돌아다니면서 여러 편의 하이쿠를 썼고, 히라이즈미에는 각지에 그 하이쿠 시비가 있다.
위 사진은 바로 그 『오쿠노 호소미치』에 대한 비석과 마쓰오 바쇼의 동상을 찍은 것이다.
곤지키도 옆에 있는 경당(經堂). 여기에는 앞서 소개했던, 금과 은을 번갈아 써서 감지에 새겨넣었다는 주손지경을 봉헌하였다고 한다. 이 당 앞에는 '이로하모미지'라는 새빨간 단풍이 드는 단풍나무가 있어서 가을이면 매우 좋은 풍경을 자아낸다고.
그리고 이 건물은 옛날에 지은 복당이다. 복당을 처음 지은 것은 13세기의 일로, 역시 건물의 보호를 위해 짓기 시작했다고 한다. 근현대에 이르러, 옛 복당은 이렇게 따로 이축하여 세워놓았고, 지금은 새로운 복당이 곤지키도를 감싸고 있다. 옛날부터 건물 위에 건물을 지어서 건물을 보호할 생각을 했었다는 게 꽤 신기했다.
옛 복당에는 곤지키도 대신 이렇게 거대한 나무 표식이 세워져 있다. 후지와라노 히데히라, 미나모토노 요시쓰네, 벤케이의 명복을 비는 것인데, 야스히라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복당 내부를 구경하면 곤지키도를 보호하기 위한 특이한 건축 구조를 확인할 수 있다.
이제 주손지의 메인 스테이지가 끝났고, 나머지 건물들을 죽 훑어보며 돌아다니는 일만 남았다. 석가당이었나 변재천당이었나 하는 건물로 들어가니 처마 위에 빨갛게 단풍이 내려앉은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문 옆에는 이렇게 나무 위에 돌을 잔뜩 쌓아놓은 기이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만 돌 쌓기를 하는 줄 알았는데, 일본에서도 비슷한 게 있는 모양이다.

耿君 識

다음 편에 계속

by 耿君 | 2009/02/25 17:13 | 일본에 가다 | 트랙백 | 핑백(3) | 덧글(4)

트랙백 주소 : http://hyunk02.egloos.com/tb/2167778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Linked at 耿君春秋 : 황금의 나라 04.. at 2009/02/25 17:14

... bsp;세 분의 장륙불상도 있었다. 천수관음의 모습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 외에도 금과 은을 번갈아 사용하여 감색 종이 위에 사경한 국보 주손지경 등이 보존되어 있었다.耿君 識다음 편에 계속 ... more

Linked at 耿君春秋 : 황금의 나라 06.. at 2009/02/28 16:33

... 지난 편에 이어서이번에는 마지막으로, 석가당 안쪽에 있는 백산 신사(白山神社)에 가보았다. 이 백산 신사는 주손지의 진수 신사로 세워졌다고 하며, 여기에는 일본의 전통무대예술인 노[能]의 ... more

Linked at 耿君春秋 : 뜨거운 바다 01.. at 2009/07/25 15:03

... 사, 사찰에는 폐백이 올려졌다. 그리고 연호도 덴표[天平]에서 덴표칸포[天平感寶]로 바꾸기까지 했다. 무쓰 국에서의 이러한 금 생산을 기반으로 해서, 히라이즈미에서 보았던 화려한 황금의 나라, 12세기 오슈 후지와라 가문의 영광도 가능했던 것이다. 그리고 후대로 가서는 일본에게 '황금의 나라'라는 이름을 가져다 준 것이다.아, 구다라노코니키시 게이후쿠[百濟王敬 ... more

Commented by 진성당거사 at 2009/02/26 02:56
저 미이라와 수급의 사진은 어디 없나 궁금하네요. 몇년 전에 일본의 즉신불 풍습에 대한 법의학 관련 책을 아주 인상깊게 읽은 적이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요.

우리나라에도 서울 남관왕묘에 덧집 형식의 건축이 있죠.
Commented by 耿君 at 2009/02/26 09:32
곤지키도 내부 사진도 구하기 힘든데, 미이라 사진은 더더욱 없을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leopord at 2009/02/26 11:03
곤지키도 안에 들어간 요리토모 기분이 어떠했을지 상상해 보는 것도 재밌었겠네요. 무인의 기백을 중시하던 그가 곤지키도에 발견한 건 단순한 사치가 아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Commented by 耿君 at 2009/02/26 17:58
그러게요. 묘한 기분이었을 것 같습니다.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