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의 나라 03 - 오슈 후지와라 가문의 몰락

지난 편에 이어서

주손지는 자각대사 엔닌에 의해 세워졌다고 하지만, 역시나 제대로 된 위용을 갖추게 된 건 오슈 후지와라 시대에 이르러서이다. 초대 당주 후지와라노 기요히라가 이 절에 다보탑과 2층 대불당 등 많은 수의 당우와 탑을 조영하였는데, 이는 전구년, 후삼년 전쟁으로 죽어갔던 많은 이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극락 정토, 불국의 세계를 만들겠다는 취지에서 이루어진 건축 사업이었다. 이렇게 탄생한 주손지는 황금의 나라 오슈 후지와라 정권의 상징이라 할 수 있었다. 특히 1124년, 즉 주손지 창건 당시에 건립된 곤지키도[金色堂]는 실로 그 황금의 나라, 극락정토를 현세에 실현한 것이라 하겠는데, 사실 내가 주손지에 온 중요한 목적이 바로 곤지키도를 보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4대에 걸쳐 이어오던 극락정토의 꿈은 서서히 끝나가고 있었다. 여기서 요시쓰네를 자살하게 만든 오슈 후지와라 가문의 4대 당주 후지와라노 야스히라의 이야기를 다시 꺼내야 할 것 같다. 야스히라는 요시쓰네의 수급을 거두어 술에 담가서 요리토모에게 보냈다. 하지만 그 수급이 요리토모 측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얼굴이 문드러져서 누구인지 알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시쓰네를 알고 있던 무장들은 그 수급이 요시쓰네의 것이 맞다고 인증해주었고, 결국 요시쓰네는 죽은 것으로 최종 처리되었다. 바로 이 부분 때문에 요시쓰네가 사실은 다카다치에서 죽지 않고 북으로 도망갔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으며, 나아가 요시쓰네가 만주 벌판을 지나 몽골로 가서 칭기스 칸이 되었다는 설까지 등장한 것이다.

황금의 나라  03
- 오슈 후지와라 가문의 몰락

耿君이 삼가 지음


1189년 4월, 요시쓰네는 죽었지만, 야스히라는 끝내 용서받지 못했다. 요리토모는 애초에 요시쓰네를 비호하고 숨겨준 야스히라도 조정의 적이라며, 허가없이 요시쓰네를 토벌한 죄를 물어 오슈 토벌을 해야 한다고 조정에 상주했다. 하지만 고시라카와 상황은 원선 발급을 불허했다. 이에 오바 가게요시[大庭景義]는 오슈 후지와라 가문이 겐지의 부하(기요히라가 요시이에의 도움을 받아 집권한 것을 말하는 듯하다)이고, 부하를 토벌하는 데에 칙허는 필요없다고 주장하며, 어차피 전장에서는 현지에 있는 장군의 명령이 중하지 조정의 칙허 따위는 필요없다고 말했다. 이에 동원령을 내린 요리토모는 마침내 1189년 7월 18일, 28만의 대군을 이끌고 출진했다. 오슈 정벌의 시작이다. 상황은 이튿날인 19일에야 못이기듯 야스히라 추토(追討)의 원선을 발급했다.

오슈 정벌군은 세 갈래로 나뉘어 출진했다. 요리토모가 직접 이끄는 주력군은 가마쿠라 가도에서 시모쓰네노쿠니[下野國]를 지나 오슈로 들어가고, 가미쓰케노쿠니[上野國]의 무사단을 중심으로 한 호쿠리쿠도군[北陸道軍]은 데와노쿠니 방면으로, 도카이도군[東海道軍]은 이와사키 방면 동로로 진격했다. 오슈 후지와라 측은 이에 맞서서 야스히라의 형인 구니히라가 총대장이 되어 2만의 군사를 이끌고, 아쓰카시 산[阿津賀志山] 기슭에 3km에 달하는 삼중 방루의 대요새를 구축하고 적을 기다렸다. 야스히라는 다가 성[多賀城]에서 전군을 총괄했다.

8월 7일, 구니히라는 요새와 해자를 설치 완료했고, 이날 밤 요리토모는 미리 준비해둔 가래 등으로 해자를 메우고 이튿날 아침 공격을 명령했다. 8일, 요리토모군은 아쓰카시 산 진지 앞에 배치된 기병대를 공파하였고, 9일 밤에는 아쓰카시 산 등반 명령이 내려졌고, 선봉대가 구니히라의 거점 목책에 접근했다. 마침내 10일, 본진이 목책 공략에 나섬과 동시에, 산을 넘어간 요리토모군이 구니히라의 군대를 기습하였다. 결국 오슈 후지와라군은 대패하였고 구니히라는 전사했다. 이를 아쓰카시 산의 전투라고 부른다.

야스히라는 이후 히라이즈미 방향으로 퇴각하였으며, 요리토모의 추격을 피하며 야스히라는 계속 북으로 북으로 도주했다. 21일, 야스히라의 수하들이 히라이즈미로 향하는 요리토모군을 막아서며 방어전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22일, 드디어 요리토모는 히라이즈미에 입성했다. 그런데 히라이즈미는 완전히 유령도시가 되어 있었다. 오슈 후지와라 가문의 정청은 불에 타버렸고, 화려했던 거리는 인기척 하나 없는 스산한 장소가 되어 있었다. 26일, 요리토모에게 사면을 구하는 야스히라의 서신이 도착했고, 요리토모는 이를 무시하고 그대로 진격했다.

야스히라는 데와노쿠니를 지나 지금의 홋카이도 지역으로 건너가 항전 태세를 갖출 생각이었으나, 9월 3일, 니에 성책[贄柵]에서 부하인 가와타 지로[河田次郞]에 의해 살해당하고 말았다. 야스히라의 수급은 6일날 요리토모에게 도착하였고, 9일에는 고시라카와 상황이 내렸던 추토 원선도 도착했다. 12일, 전구년 전쟁의 마지막 전장 구리야가와에 도착한 요리토모는, 옛날에 아베노 사다토가 미나모토노 요리요시에 의해 그렇게 되었던 것처럼, 야스히라의 머리에 큰 쇠못을 박고 높은 장대에 꽂아 효수하였다. 이후 야스히라의 가신이었던 오카와 가네토[大河兼任]가 주군의 원수를 갚는다며 봉기하였으나 결국 진압되었고, 오슈는 가마쿠라 막부의 직할지로 접수되어 평정되었다. 그리고 오슈 후지와라 가문은 4대를 끝으로 소멸하고 말았다.

『아즈마카가미』에 비친 야스히라의 모습은 계속 도망치며, 변변한 저항도 못하는 못난 군주의 그것이지만, 최근에는 요시쓰네를 살리려고 애쓰고, 비록 부하에 의해 살해당하였으나 마지막까지 저항하려 했던 인물로 야스히라를 재조명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어떻게 보는 것이 옳은지 나로서는 판단이 바로 서지 않지만, 다음 대화를 통해 그 판단을 도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야스히라의 수급이 요리토모에게 도착한 다음날인 9월 7일, 야스히라의 부하 유리 하치로[由利八郞]가 붙잡혔다. 요리토모는 유리 하치로의 용맹한 모습에 탄복하여 그와 대화를 나누었다.
요리토모가 말했다. "야스히라는 오슈에서 위세를 떨치고 있어서, 형벌을 가하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심상한 낭종(郎從)이 없는 고로, 가와타 지로 한 사람에게 베임을 당했다. 두 구니[國]를 다스리고 17만 기병을 거느리면서, 20일 정도 만에 일족이 모두 망했다. 말할 것도 없는 일이다."
그러자 유리 하치로가 말했다. "작고한 사마노카미[左馬頭](요리토모의 아버지 요시토모를 말함) 나리는 해도(海道)의 15개 구니를 다스리셨지만, 헤이지의 난으로 하루만에 영락하고, 수만 기병의 주인이었지만, 오사다 다다무네[長田忠致]에게 죽임을 당하셨지요. 지금이랑 그때랑 다른 게 뭡니까? 야스히라는 겨우 2개 구니의 용사들을 거느리고도, 수십 일이나 요리토모님을 괴롭혔습니다. 어리석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요리토모는 이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요리토모는 오슈 후지와라 가문이 사라진 히라이즈미에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히라이즈미에 있는 각종 사찰들을 보호할 것을 명령했다. 일반적으로 정벌의 대상이 된 세력의 거점은 남김없이 불태워지고 파괴되기 마련인데, 요리토모는 오히려 사찰의 보호령을 내렸으니 이상하기 그지없다. 어쩌면 극락정토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조성된 히라이즈미의 아름다운 건축물과 마을이 요리토모의 마음을 흔들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요리토모마저도 보호해주었던 히라이즈미의 사찰들은 후대의 전쟁과 화재 등으로 인해 하나둘씩 불에 타들어갔다. 주손지도 예외는 아니었다. 14세기에 들어 화재로 인해 주손지의 당탑은 소실되었다. 단, 곤지키도는 이 화마의 손길에서 구제되었다. 에도 시대에 다테 가문의 보호를 받으면서 경내의 재건이 이루어졌고, 주손지는 지금까지 그 명맥을 유지해오고 있다.

耿君 識


다음 편에 계속

by 耿君 | 2009/02/21 00:51 | 일본에 가다 | 트랙백 | 핑백(3) | 덧글(10)

트랙백 주소 : http://hyunk02.egloos.com/tb/2167335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Linked at 耿君春秋 : 황금의 나라 02.. at 2009/02/21 00:52

... 그 건물이 그 건물 같고 비슷비슷해보여서 약간 질리는 감도 없잖아 있었다. 나는 '언제쯤이면 메인 스테이지가 등장하나' 하는 생각을 하며, 비내리는 언덕길을 걷고 있었다.耿君 識다음 편에 계속 ... more

Linked at 耿君春秋 : 황금의 나라 04.. at 2009/02/24 23:04

... 지난 편에 이어서주손지의 본당에 모셔진 본존불은 아미타여래이다. 그리고 본당 안쪽에 있는 불멸의 법등은 전교대사(傳敎大師) 사이초[最澄] 때부터 지금까지 꺼지지 않고 이어져오고 있다는 이 ... more

Linked at 耿君春秋 : 황금의 나라 08.. at 2009/03/05 20:33

... 굵고 짧은 화려했던 삶, 그리고 그의 안타까운 죽음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의 불사 전설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전설에 나오는 가게무샤와 관련된 의문이 바로 앞서 '오슈 후지와라 가문의 몰락' 포스팅에서 이야기했던, 문드러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는 요시쓰네의 수급에 관한 이야기이다. 어쨌든 이 불사 전설이 점차 확장되어서, 요시쓰네가 죽지 않고 ... more

Commented by 악희惡戱 at 2009/02/21 01:22
결국엔 요시토모가 ㅄ이라고 까 준 게 되겠군요^^;;
Commented by 耿君 at 2009/02/21 12:29
저 대화만 보더라도 유리 하치로가 어지간히 용감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재팔 at 2009/02/21 09:00
이게 다 요시쓰네 때문이라능!
Commented by 耿君 at 2009/02/21 12:30
ㅠㅠ
Commented by ghistory at 2009/02/21 19:36
사바노카미/해도: 무엇들인지 알려주실 수 있으신지요?
Commented by 耿君 at 2009/02/21 19:50
사바노카미[左馬頭], 해도[海道].
자세한 건 사전에서 ㅋㅋ
Commented by ghistory at 2009/02/21 19:52
이정도만 알아도 검색할 수 있지요.
Commented by 耿君 at 2009/02/21 20:00
아 그러고보니 사마노카미군요;;; 고쳤습니다 ㅎㅎ
Commented by leopord at 2009/02/22 12:18
지금보다 더 많은 것이 힘으로 결정되던 시대의 이야기는 어딘가 엄숙한 데가 있는 듯 합니다.
Commented by 耿君 at 2009/02/22 13:14
그쵸? 저도 그런 걸 많이 느낍니다.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