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의 나라 01 - 벤케이의 자취

닷코쿠의 전설 07에 이어서

빗길을 신나게 달리던 버스는 모쓰지를 지나 히라이즈미 역으로 들어섰다. 그나마 몇 안 되던 승객들 모두 히라이즈미 역 정류장에서 다 내려버리고, 나 혼자만 버스를 타고 이동하게 되었다. 12시 50분 쯤 되어 버스는 종점 주손지[中尊寺] 정류장에 도착했다. 닷코쿠노이와야에서 여기까지 오는 데에는 420엔의 요금이 들었다. 차에서 내리고 나니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다. 살짝 짜증이 치밀어올랐지만 어찌할 도리 없이 점퍼 후드를 뒤집어쓰고, 지도를 젖지 않도록 주머니 안에 잘 넣어 두었다.

황금의 나라  01
- 벤케이의 자취

耿君이 삼가 지음


주손지 정류장에서 앞으로 나아가다 왼쪽으로 홱 방향을 틀면 주손지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온다. 하지만 나는 주손지에 가기 전에 가보고 싶은 곳이 있었다. 주손지 앞에 있는 무사시보 벤케이[武藏坊辨慶]의 묘가 바로 그 곳이다.
'아 때는 어느덧 12월로 접어들려고 할 때, 조락의 계절을 맞아 낙엽도 한 장밖에 남지 않았구나' 라는 내용을 담고자 위 사진을 찍었는데, 찍고 나니 어째 좀 그런 맛이 안 난다;; 어쨌든 벤케이의 묘 근처에 오니 마음이 감성적이게 되는 것 같다.
여기가 바로 무사시보 벤케이의 묘로 전해지는 장소이다. 묘석 앞에 저렇게 '무사시보 벤케이의 묘[武藏坊辨慶之墓]'라고 적힌 거대한 비석이 세워져 있다.
비석 뒤에 있는 작은 둔덕 위에 저렇게 묘석이 놓여 있다. 무사시보 벤케이는 미나모토노 요시쓰네를 그림자처럼 수행한 충성스러운 심복으로, 힘이 매우 세고 용맹한 법사(法師), 즉 승려였다고 한다.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역사 사료 상으로 알려진 바가 매우 드물어, 『아즈마카가미』에 1185년 요시쓰네를 따르는 종자 중 한 명으로 등장하고, 『헤이케 모노가타리[平家物語]』 등에 이름이 나오는 정도이다.

각종 설화와 전승, 그리고 요시쓰네의 이야기를 다룬 군담 문학 등에서는 벤케이를 영웅적이고 전설적인 캐릭터로 묘사하고 있다. 『기케이키[義經記]』에서는 벤케이가 구마노의 별당의 아들로 태어나, 히에이 산[比叡山]에서 수행하다가, 산을 빠져나와 힘자랑을 하고 다니며 악명을 떨쳤다고 되어 있다. 벤케이는 사람과 결투를 하여 칼을 빼앗는 칼 사냥을 하고 있었는데, 999자루의 칼을 손에 넣고 이제 1천 자루를 채우려는 순간, 하필 그때 나타난 결투 상대가 요시쓰네였다고 한다. 벤케이는 요시쓰네의 칼을 빼앗으려고 덤볐으나 결국 실패했고, 자신보다 강한 요시쓰네와 군신의 맹약을 맺었다.

이후 벤케이는 요시쓰네를 늘 따라다녔고, 위에도 서술한 것처럼 요시쓰네가 히라이즈미로 도주할 때에도 함께 따라갔는데, 이와 관련해서는 요곡 『아타카[安宅]』나 가부키 『권진장(勸進帳)』에 재미난 이야기가 전한다. 
요시쓰네와 벤케이는 요리토모의 눈을 피해 수행자의 복장을 하고 교토를 벗어나 오슈로 도망가는 길이었다. 그런데 아타카노세키[安宅關]에서 검문을 받게 되자, 벤케이는 지략을 내어, 자신들이 불에 탄 도다이지[東大寺]를 재건하기 위한 비용을 기부받는[勸進] 수행자들이라고 자신들을 소개했다. 그러자 아타카노세키의 수비장 도가시 사에몬[富樫左衛門]이 이를 수상하게 여겨 권진장을 읽어보라고 명령하고, 벤케이는 이에 아무 족자 문서 하나나 꺼내서 권진장인 것처럼 꾸미며 낭독했다고 한다. 도가시는 이어서 벤케이에게 수행자들의 비밀 주문이나 수행 방법 등에 대해서 물어보았는데, 벤케이는 막힘 없이 대답했다. 도가시는 이에 통과를 허가했는데, 도가시의 수하 중 한 명이 변장한 요시쓰네를 수상하게 여겨 막아섰다. 그러자 벤케이는 주군인 요시쓰네를 금강장(金剛杖)으로 때려 사람들의 의심을 풀었다. 결국 그들은 무사히 아타카노세키를 빠져나와 오슈로 도망칠 수 있었다.

연극으로 전하는 이러한 내용이 사실일 가능성은 다소 희박하나, 요시쓰네와 벤케이가 어떤 고난을 겪으면서 히라이즈미로 도망쳤을지를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 상상해볼 수 있다. 여하튼 요시쓰네는 무사히 히라이즈미에 도착하여 보호를 받았지만, 히데히라가 죽은 뒤 요리토모의 압박을 이기지 못한 야스히라가 1189년에 결국 요시쓰네가 머무르던 고로모가와 관을 습격하면서 요시쓰네는 비극적인 죽음을 맞게 된다. 무사시보 벤케이도 이때 쳐들어오는 적에 맞서 싸우다가, 고로모가와에서 장렬하게 선 채로 죽었다고 한다. 벤케이의 최후에 대해서는 『삼국지』에 나오는 전위의 최후와 흡사한 관계로 사람들의 의심을 받기도 한다.
무사시보 벤케이의 무덤과 비석 옆에 세워져 있던 안내판. 안내문에 따르면 벤케이가 고로모가와에서 선 채로 죽음을 맞이하자, 그 시신을 거두어 이 땅에 장사지내고 오륜탑을 세웠다고 한다. 후세에 주손지의 승려로 있던 소초[素鳥](이 소초라는 승려이자 시인은 지난 번 모쓰지 이야기에서도 마쓰오 바쇼의 시비를 세운 사람으로 등장했다)가 벤케이의 일을 읊은 시를 비석으로 세웠다고 한다. 그 시 구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색 변치 않는 / 소나무 주인이네 / 무사시보여
色かえぬ  松のあるじや  武藏坊

耿君 識

다음 편에 계속

by 耿君 | 2009/02/13 21:32 | 일본에 가다 | 트랙백 | 핑백(2)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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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ed at 耿君春秋 : 닷코쿠의 전설 0.. at 2009/02/13 21:34

... 에 맞춰 이와테 현 교통 버스가 도착했다. 버스에 올라타서 내부를 살펴보니, 아까와는 달리 타고 있는 손님들이 서너 명 늘었다. 이제 닷코쿠를 떠나 주손지로 갈 차례이다.耿君 識다음 편에 계속 ... more

Linked at 耿君春秋 : 황금의 나라 02.. at 2009/02/19 19:14

... 지난 편에 이어서이제 주손지 경내로 들어가자. 주손지[中尊寺]는 일본 천태종의 도호쿠 대본산으로, 이 절 역시 모쓰지와 마찬가지로 자각대사 엔닌이 850년에 창건했다고 한다. 히라이즈미의 ... more

Commented by 우왕구우웃 at 2009/02/13 22:38
벤케이를 그린 옛 그림 같은것은 없나요?
Commented by 耿君 at 2009/02/13 23:40
있겠지만 대개 후대에 그린 것이겠죠?
Commented by 나츠메 at 2009/02/13 23:34
벤케이랑 요시츠네가 교토에서 싸운 다리 이름이... 그 뭐시기 있지 않나요? (기억이 가물 가물)
Commented by 耿君 at 2009/02/13 23:41
고조오하시[五條大橋] 말씀이시군요.
Commented by 나츠메 at 2009/02/14 11:02
네. ㅎㅎ 기억납니다.
Commented by 악희惡戱 at 2009/02/14 01:21
그러고 보니 요시쓰네를 때린 저 일화는 요시쓰네를 소재로 한 만화책에서 몇 번 본 것 같아요. 근데 저 상황하고 같은 거였는지는...;;;;;
Commented by 耿君 at 2009/02/14 09:54
꼭 저 상황이 아니라도 쓰일 수 있는 네타지요 ㅎㅎ
Commented by rumic71 at 2009/02/14 01:53
검문 장면 직전까지는 드라마를 보았는데... 정작 중요한 에피소드를 놓쳤군요.
Commented by 耿君 at 2009/02/14 09:55
아 저 아타카노세키 검문도 드라마에 나오는군요.
Commented by rumic71 at 2009/02/14 14:11
제가 본 것은 '검문 때에는 이렇게 하자!'고 작전을 짠 뒤 출발하려는 데 까지였습니다. 그러니 그 다음에 나왔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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