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코쿠의 전설 03 - 암면 대불

지난 편에 이어서

에미시와 조정의 대결, 전구년과 후삼년 전쟁, 요리토모의 오슈 정벌. 고대의 무쓰노쿠니와 데와노쿠니, 즉 지금의 도호쿠 일대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전란에 휩싸여 있었다. 그만큼 수많은 목숨들 ─ 그것이 적이든 아군이든 ─ 이 이 땅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야 했다. 그래서 오슈 후지와라 가문의 사람들이 더더욱 히라이즈미를 평화로운 극락정토로 만들려고 노력했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전쟁터였던 동굴에 절을 세운 다무라마로도 전쟁으로 죽어간 영혼들을 위로하려 했을 것이었다. 그리고 전쟁으로 죽어간 혼령들을 공양하고자 했던 또 한 사람이 있었다.

닷코쿠의 전설  03
- 암면 대불

耿君이 삼가 지음


비사문당의 출구 계단을 내려와 왼쪽으로 가면 절벽에 마애불 한 분이 자리를 잡고 계신다. 큼지막한 코에 축 늘어진 귓불, 다부진 입술. 강건한 부처의 상은 어쩐지 우리나라에서 봄직한 그런 마애불의 모습이다.
이 마애불의 이름은 '암면 대불(岩面大佛)'. 33m에 달하는 대형 암벽에 새겨진 이 마애불을 만든 사람은 바로 전구년, 후삼년 전쟁에 모두 참전한 무쓰노카미 미나모토노 요시이에라고 전해온다. 전쟁에서 죽은 적과 아군의 모든 영혼을 공양하기 위해, 요시이에가 말 위에서 활고자(시위를 거는 활 양쪽 끝부분)로 조각했다고 하는 전설적인 이야기가 이 불상에 깃들어 있다. 불상 전체의 키는 약 16.5m라고 하며, 얼굴은 약 3.6m로 일본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큰 불상이다. 겐로쿠 9년(1696)의 기록에 따르면 이 불상은 '대일지존체(大日之尊體)', '바위 대일[岩大日]'이라 불렸고, 후에 바위 대불로 불리다가 암면 대불이라는 명칭이 굳어져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름으로 보면 이 부처는 '대일여래'인 것으로 보이나, 닷코쿠 세이코지에서는 이 부처를 '아미타불'로 모시고 있는데, 대불 아래에 있는 1312년에 새겨진 비석에 아미타불의 종자인 '키릭'이 새겨져 있는 것을 그 근거 중 하나로 삼고 있다. 그런데 이 부처도 지진 앞에는 장사가 아니라, 메이지 29년에 지진으로 인해 가슴 부분부터 아래쪽이 붕괴되었다고 한다. 마멸이 심해지고 있어 조급한 보호가 필요하다는 호소가 안내문에 적혀 있다.
안내문에 언급된 1312년 비석을 비롯하여, 암면 대불의 아래에는 다양한 비석들과 석물이 놓여 있었다.
세월이 지나감에 따라 그 글자를 자세히 알아볼 수 없는 비석도 있었다. 이 모두 암면 대불의 역사 또한 그처럼 오래되었음을 말해주는 증좌들이다.
암면 대불이 있는 암벽 가까이로 바짝 다가가서 위를 올려다보았다. 대불의 위엄이 한층 돋보이는 것 같다. 팸플릿에 의하면, 대불 앞에서는 수많은 영혼들의 공양을 위해, 합장하며 '나무아미타불'이라고 명호를 외치면 된다고 말하고 있다. 나도 대불 앞에서 합장을 했다. 팸플릿에는 다른 불당에 대한 기도 방식 안내도 나와 있는데, 아까 들어갔던 비사문당에서는 (1) 박수를 치며 기원을 하거나 (2) 합장하고 '온베이시라마나야 소와카'라고 진언을 외우는 방법도 있다고 한다.
암면 대불과 비사문당이 내려보는 뜰 가운데에는 위 사진과 같은 비석이 하나 세워져 있다. 라이 미키사부로[賴三樹三郞]의 시비가 바로 그것이다. (비석에 새겨진 鴨崖頼醇이라는 이름은 라이 미키사부로를 지칭한다. 鴨崖는 그의 호이고, 醇이 그의 이름이다) 비석에는

사나운 바람이 동굴을 가득 채우고 괴이한 구름이 어지러우니
장군이 적을 섬멸한 흔적을 말하는 것이라
獰風満洞怪雲昏/説是将軍殲賊痕……

로 시작되는 시구가 새겨져 있다. 아마도 사카노우에노 다무라마로의 일을 읊은 시이리라. 라이 미키사부로는 유학자 라이 산요[賴山陽]의 아들로, 존황 운동에 감화되어 막부가 조정을 경시하는 것에 분개하던 인물이었다. 미키사부로는 1843년, 에도에서 유학을 공부하다 쇼군 가문의 보리사찰 간에이지[寬永寺]의 석등을 파괴하는 일을 저질러 퇴학당한다. 그리고 도호쿠 지방과 에조치를 유람하였는데, 이때 히라이즈미에도 들러 시 몇 편을 남겼다고 한다. 1849년에 교토로 돌아온 그는 존황파 지사들과 교류를 계속했고, 1853년 페리 제독이 일본에 온 이후로는 존황양이 운동의 강도를 높여갔다. 1858년에는 쇼군 후계자 문제를 둘러싸고 히토쓰바시 요시노부[一橋慶喜: 훗날의 도쿠가와 요시노부]를 옹위하고 존왕양이를 추진할 것을 조정에 요구하며 공작을 벌이다가, 안세이의 대옥 때 위험인물로 막부에 의해 체포되어 참수되고 말았다.

耿君 識

다음 편에 계속

by 耿君 | 2009/02/10 12:18 | 일본에 가다 | 트랙백 | 핑백(3)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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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미시의 기운을 누르듯이 비사문천의 불당이 조성되었고, 정이대장군 사카노우에노 다무라마로는 악당 에미시를 무찌르고 수많은 일본인들과 귀순한 에미시들의 비사문천이 되었다.耿君 識다음 편에 계속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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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편에 이어서닷코쿠노이와야 비사문당 경내에는 비사문당과 암면 대불 말고도, 변천당(辨天堂), 부동당(不動堂), 금당(金堂) 등의 불당이 있다. 비사문당 바로 앞마당, 즉 라이 미키사부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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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금의 나라'로 할 생각이어서 계획에 없었던 장인데, 닷코쿠에 대해 쓸 이야기가 많아져서 결국 별도의 장으로 탄생하였습니다.01 마지막 날의 버스02 닷코쿠노이와야 비사문당03 암면 대불04 두꺼비 연못의 벤자이텐05 히메를 기다리며 (1)06 히메를 기다리며 (2) 07 주먹밥과 부적* 황금의 나라: 오슈 후지와라 가문의 화려했던 옛날의 흔적들을 소개하는 ... more

Commented by 악희惡戱 at 2009/02/10 12:58
역시 이 동네는 세월보다는 지진이 더 무섭군요-_-
Commented by 耿君 at 2009/02/10 17:52
다음 편에 지진의 피해를 더욱 처절하게 보여주는 물건이 나옵니다;;
Commented by 진성당거사 at 2009/02/10 14:57
경주 선도산에 있는 골굴암 마애불이 생각나네요. 안면이 조금 사무라이 스타일(? - 훨씬 남성적이고 강인해보인다는 의미입니다) 인 걸 빼면 풍화된 부분까지 거의 형제같이 닮았네요. 이 불상에 대해서는 아예 들어보지도 못했는데, 좋은 소개글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耿君 at 2009/02/10 17:52
그렇군요! 저도 어쩐지 한국에서 본 듯한 불상이다 싶었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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