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코쿠의 전설 02 - 닷코쿠노이와야 비사문당

지난 편에 이어서

이번에 찾아가는 닷코쿠노이와야 비사문당에는 다음과 같은 전승이 전해온다. 800년경, 아쿠로오[惡路王], 아카가시라[赤頭], 다카마루[高丸] 등의 에미시들은 닷코쿠노이와야[達谷窟]라는 동굴에 산채를 짓고 거점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들은 양민을 괴롭히고 여자들을 빼앗는 등 난폭한 짓을 저질렀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의 기세가 등등해서 국부(國府)에서도 이를 진압하지 못하고 애를 태우고 있었다. 이때 간무 천황[桓武天皇]이 사카노우에노 다무라마로[坂上田村麻呂]를 정이대장군에 임명하고 에미시 정벌의 칙령을 내렸다. 다무라마로는 군사를 이끌고 아쿠로오의 닷코쿠노이와야로 진격했다.

아쿠로오 일당은 3천여 명의 도적을 이끌고 스루가노쿠니[駿河國] 기요미가세키[淸美關], 즉 지금의 시즈오카 인근까지 내려왔다가, 대장군이 수도를 출발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두려워하여 도로 동굴로 돌아가 수비를 공고히 했다고 한다. 그리고 엔랴쿠 20년(801), 대장군 다무라마로는 동굴에서 농성하고 있는 에미시와 격전을 벌인 끝에, 마침내 이들을 무찌르고 아쿠로오, 아카가시라, 다카마루의 목을 베어 에미시를 평정했다. 대장군은 전쟁의 승리가 비사문천(毘沙門天)의 가호 덕분이라고 믿었고, 그 답례로 교토의 기요미즈데라[淸水寺]의 부타이[舞臺]를 본따 만든 9칸 4면의 정사(精舍)를 지어, 108체의 비사문천을 모시고 국가를 진호하는 기원 사찰이라 하여 이와야 비사문당(굴당이라고도 함)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그 옆에 별당(別當) 사찰로 오신[奧眞] 상인(上人)을 개창자로 하여 세이코지[西光寺]를 창건하였다. 그리고 이 일대의 광대한 영역을 사찰령으로 삼았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한다.

닷코쿠의 전설  02
- 닷코쿠노이와야 비사문당

耿君이 삼가 지음


아쿠로오 일당이 실존하는 에미시 수장들이었다고 볼 수는 없다. 물론 에미시가 시즈오카 인근까지 내려왔다는 것도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리고 그들이 선량한 백성들을 괴롭히는 100% 순수 악당이었다는 설정은 정이대장군 다무라마로를 추켜세우고 그 정복 대상인 에미시를 이미지화하면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조정의 복속 시도에 무력 저항하던 에미시 세력이 이 일대에 존재했던 것은 사실이고, 그 에미시의 저항으로 인해 조정이 매우 속을 썩였으며, 사카노우에노 다무라마로의 등장으로 에미시와의 전쟁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 것도 기록에 남아있다. 그때 다무라마로에 맞서 싸우던 에미시의 대표격 수장은 바로 아테루이였다. 그래서 오늘날 학자들은 아쿠로오라는 인물이 바로 아테루이를 모델로 하여 만들어낸 캐릭터일 것으로 보고 있으며, 닷코쿠노이와야는 실제 아테루이의 근거지일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길을 건너가니 바로 앞에 초가가 하나 보였다. 문 쪽에 '御供所'라는 말이 적혀 있다. '고쿠쇼'라고 읽으며, 공양물을 정리하고 보관하는 장소를 말한다.
'사적명승 닷코쿠노이와야 비사문당'이라는 문구가 적힌 심플한 기둥이 나를 반긴다.
들어가는 입구 어귀에 세워진 표찰에는 '여기서부터 살생 금단지'라는 말이 적혀 있다. 이 비사문당이 있는 경내는 옛날부터 살생을 금하는 신역(神域)으로 여겨졌다고 한다. 그래서 경내에서는 개를 데리고 오거나, 동식물을 채취하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음식물을 먹는 일을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입구 옆의 사무소(寺務所)를 기웃거리니 할아버지 한 분이 창문을 열어주신다. 300엔을 드리고 입장권을 받아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는 일본이라 그런지 절의 산문이 도리이[鳥居]로 되어 있었다. 참배로에는 세 개의 도리이가 있었는데, 첫번째 도리이는 위로 두번째 사진 속의 돌로 된 도리이이다.
그리고 이 나무로 된 도리이가 두번째 도리이. 도리이 가운데에는 '닷코쿠 영굴[達谷靈窟]'이라는 굴호가 새겨져 있다.
이 도리이에 대한 안내판이 길가에 세워져 있었다. 아래에 번역하여 옮겨본다.

'첫째 도리이는 돌 도리이, 둘째 도리이는 붉은 도리이, 셋째 도리이는 삼나무 도리이'라고 칭해지며, 옛부터 참배로에 있었다. 셋째 도리이는 메이지 초기에, 둘째 도리이는 쇼와 30년에 잃어버렸으나, 헤이세이 10년에 재건하였다. 둘째 도리이, 셋째 도리이 모두 다른 곳에서는 보이지 않는 특수한 양식을 지금에도 전하고 있다. 첫째 도리이는 '히코주로, 도쿠지, 세이노조'라는 닷코쿠 마을의 세 사람의 석공에 의해 닷코쿠의 돌을 사용하여 에도 시대에 건립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셋째 도리이랑 아까 전의 둘째 도리이는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도리이라는 건데, 얼핏 보면 단청도 퇴색된 것처럼 보이는 게 상당히 오래된 도리이인양 느껴진다. 길가 왼쪽에는 '고봉산(古峯山)'이라고 적힌 돌이 하나 서있다.
바로 이것이 닷코쿠노이와야 동굴에 조성한 비사문당 건물의 모습이다. 교토의 기요미즈데라 부타이 건물을 본따서 만들었다고 하더니, 정말 구조가 비슷해보인다. 암벽에 의지하여 건물을 조성해 놓아서 그런지 훨씬 더 특이하게 느껴졌다.
건물 옆에는 이렇게 글이 빼곡하게 적힌 안내판이 두 개 세워져 있었다. 이 안내문들은 입장 때 사무소에서 표와 함께 주는 팸플릿에도 다 적혀 있는 것들이다. 위 사진 속 글은 비사문당의 연기(緣起)을 적은 글인데, 비사문당의 창립 설화에 대해서는 본 포스팅의 앞부분에서도 설명했으므로, 그 이후의 이야기를 이어갈까 한다.

다무라마로가 절을 세운 뒤, 전구년, 후삼년 전쟁이 발발했을 때 미나모토노 요리요시[源賴義]와 요시이에[義家] 부자가 전승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이 절에 땅을 기진했고, 오슈 후지와라 가문의 1대 당주 후지와라노 기요히라[藤原淸衡], 2대 모토히라[基衡]는 여기에 7당 가람을 건립하였다고 전한다. 1189년에는 오슈 정벌을 하고 돌아가던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賴朝]가 여기에 들러 참배를 했고, 그 장면이 『아즈마카가미』에 적혀 있다. 중세에는 이 일대의 유력자 가사이[葛西] 가문이 이 비사문당을 높이 받들었고, 1490년에 큰 불이 나 불당이 소실되었을 때에도 가사이 가문이 즉각 재건을 했다. 센고쿠 시대에는 나가사카[長坂] 가문이 별당직을 맡아 많은 신도들을 거느렸으나, 전쟁으로 인해 암벽에 붙은 비사문당을 제외한 사찰의 모든 당우가 소실되었다. 1615년, 다테 마사무네[伊達政宗]가 비사문당을 고쳐지으면서 닷코쿠노이와야 비사문당은 다테 가문의 기원 사찰로서 또 영지를 기진받았다.

하지만 비사문당은 쇼와 21년(1946) 인근 주택에서 난 불이 옮겨붙으면서 전소되고 말았다. 다행히 비사문당 안에 있던 본존불 이하 20여 체의 불상은 안전히 구해졌다. 그리고 쇼와 36년(1961)에 비사문당은 다시 재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불상 중에는 모쓰지를 창건했던 자각대사 엔닌이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본존불, 길상천, 선니자동사(善膩子童士)를 비불로 모시고 있는데, 오는 2010년에 공개할 예정이라고.
그 옆에는 닷코쿠노이와야와 '다무라 신앙'에 대한 안내문도 있었다. 사카노우에노 다무라마로가 지었다고 하는 이 닷코쿠노이와야 비사문당은 중세의 여러 문학 작품에 그 이름이 보인다고 한다. 그리고 나중에는 대장군 다무라마로 그 자신이 사실 비사문천의 화신으로 내려와서 일본을 지켜준 것이라는 '다무라 신앙'이 등장하기에 이른다. 그 발상지가 바로 여기 닷코쿠노이와야라는 것이다. 엔닌이 새긴 본존불의 얼굴이라는 것도 사실은 대장군의 얼굴을 본떠서 새긴 것이라고 전해진다고. 옛부터 이 절에는 떠돌아다니는 성인이나 수행자들이 편히 쉴 수 있는 숙소로 이용되었고, 또 전쟁에 진 무사들이 몸을 숨기고 재기를 노리는 재생의 장으로 여겨졌다고 하는데, 게다가 조상의 영혼까지 저 세상에서 돌아와 머무는 성스러운 땅이라고. 안내문 마지막에 적혀 있는

'나무 다무라 대장군[南無田村大將軍]'

이라는 염불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나무아미타불도 아니고 나무 대장군이라니.
비사문당 앞에 서 있는 석수상. 묘하게 생긴 것이 약간 귀여운 면도 보인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비사문당 내부로 들어갈 수 있다. 비사문당 내부는 사진촬영을 금하고 있어서 사진을 찍지는 않았다. 들어가니 암벽 쪽으로 이십여 개의 불상들이 나란히 모셔져 있었다. 바위의 기운 때문인지 불당 안에는 약간 싸한 기분이 감돌고 있었고, 진짜 암굴의 느낌이 들었다. 신기한 마음에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암벽과 건물벽이 맞닿는 부분에 눈길이 갔다. 마치 건물을 바위가 한 입 베어문 듯한 느낌이랄까. 그런데 버스 기사 아저씨가 '천장을 보라'고 말한 것이 생각나서 천장을 올려다보기는 했는데, 별다른 구경거리는 보이지 않았다. 과연 기사 아저씨의 말씀은 무엇이었을까.

비사문당을 보면서도 나는 대장군 다무라마로에 대해 생각하기보다는, 이 동굴에 자리잡고 있었을 아쿠로오 내지는 아테루이와 에미시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했다. 사실 내가 닷코쿠노이와야를 찾아온 목적은 '아테루이의 근거지로 추정되는 그곳'을 방문 답사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굴에 머물던 에미시 '악당'들은 토멸되어 자취를 감추었고, 이제 전승 속에만 남아 있다. 그 자리에는 에미시의 기운을 누르듯이 비사문천의 불당이 조성되었고, 정이대장군 사카노우에노 다무라마로는 악당 에미시를 무찌르고 수많은 일본인들과 귀순한 에미시들의 비사문천이 되었다.

耿君 識

다음 편에 계속

by 耿君 | 2009/02/09 15:39 | 일본에 가다 | 트랙백 | 핑백(4)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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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날의 버스'인 것만 같아보였다. 나같이 남들 잘 안다니는 여행지를 골라 돌아다니는 승객 외에는 아무도 타지 않았던 쓸쓸한 버스여서 더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耿君 識다음 편에 계속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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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편에 이어서에미시와 조정의 대결, 전구년과 후삼년 전쟁, 요리토모의 오슈 정벌. 고대의 무쓰노쿠니와 데와노쿠니, 즉 지금의 도호쿠 일대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전란에 휩싸여 있었다.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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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이 신문의 기사를 보여주는 야후! 저팬의 기사 페이지<일본에 가다> 여행기 중에서 '모리오카로 오세요'의 시와 성 이야기와 '닷코쿠의 전설'의 닷코쿠노이와야 비사문당에서 소개한 바 있던 사카노우에노 다무라마로[坂上田村麻呂]의 좌상(坐像)이 교토의 기요미즈데라[淸水寺]에 안치되어 있었는데, 그 좌상이 99년 만에 세상에 공개되었다고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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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바람', 후반부를 '황금의 나라'로 할 생각이어서 계획에 없었던 장인데, 닷코쿠에 대해 쓸 이야기가 많아져서 결국 별도의 장으로 탄생하였습니다.01 마지막 날의 버스02 닷코쿠노이와야 비사문당03 암면 대불04 두꺼비 연못의 벤자이텐05 히메를 기다리며 (1)06 히메를 기다리며 (2) 07 주먹밥과 부적* 황금의 나라: 오슈 후지와라 가문의 화려했던 옛날 ... more

Commented by 르-미르 at 2009/02/09 15:56
아쿠로오라니, 악의적으로 붙인 이름이라는게 눈에 띄는데요;;;
Commented by 耿君 at 2009/02/09 20:03
그쵸;;; 마왕 필이 나는 이름입니다.
Commented by 진성당거사 at 2009/02/09 23:35
아, 대단합니다. 사진 잘 봤습니다.

악당 에미시를 무찌르고 수많은 일본인들과 귀순한 에미시들의 비사문천이 됐다. 이 표현 잘 쓰신 것 같네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일본의 유명 문화재들 몇몇은 2차대전과 그 직후 5-6년간 사이에 훼손된 것이 상당히 많더군요. 이 건물도 그렇고, 호류사도 그랬고, 금각사도 그랬고.

금각사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그 건물의 옛날 사진자료 - 원래의 건물 - 는 어떻게 찾아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전부터 찾아보려고 했는데 잘 안나오더군요.
Commented by 耿君 at 2009/02/10 11:27
허허 감사합니다. 표현이 괜찮았나요;;
예전 같으면 불이 나거나 훼손 위험에 있어도 관리가 잘 되었을 것이 전쟁 중이거나 그 직후일때 관리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거나 부주의하게 되어서 그리 된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사진자료는 잘...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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