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2월 09일
닷코쿠의 전설 01 - 마지막 날의 버스
정토의 바람 10에 이어서
요시쓰네 처자의 묘에서 나와 아까 전에 갔었던 모쓰지 버스 정류장으로 돌아갔다. 이제 다음 행선지는 닷코쿠노이와야[達谷窟]. 닷코쿠노이와야는 아쿠로오[惡路王]라는 에미시의 수장이 살던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아쿠로오는 정이대장군 사카노우에노 다무라마로에 맞서 항전했던 아테루이이거나 그를 모델로 한 인물로 추정되고 있다. 그 아쿠로오의 근거지였던 바위 절벽 동굴에 세워놓은 비사문당(毘沙門堂)이 유명하다.
닷코쿠의 전설 01
- 마지막 날의 버스
耿君이 삼가 지음
버스 정류장으로 가니 다시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한다. 히라이즈미 역에 도착해서부터 비가 왔다가 개었다가 바람이 불었다가 멎었다가를 반복하는 변화무쌍한 날씨가 계속되었다. 후드 모자를 푹 뒤집어 쓰고 정류장에 있는 버스 시간표를 다시 확인했다. 그런데,
시간표 앞에 노란색 테이프로 붙여져 있는 공지문. 그 공지문에는 주손지-모쓰지-닷코쿠노이와야-이치노세키 시 박물관-게이센카쿠를 지나는 버스, 즉 내가 타야 하는 버스가 운행이 종료될 예정이라고 적혀 있었다. 아, 물론 12월 1일부터 운행이 정지된다는 것은 인터넷을 통해 이미 정보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일부러 닷코쿠노이와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히라이즈미 가는 일정을 11월 30일로 맞춰놓은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공지문 하단에 적혀 있는 일자를 보고 나는 경악했다.
뭐????? 11월 30일부터 운행 중지라고??? 그럼 난 버스를 탈 수 없다는 건가!!!
다급한 마음에 안내문에 적힌 전화번호로 얼른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긴장감을 높여주는 가운데 남성분이 전화를 받았다.
"네, 이와테 현 교통입니다."
"안녕하세요, 저 버스 운행 때문에 문의드리려고 하는데요."
"네. 말씀하세요."
"게이센카쿠에서 주손지까지 가는, 닷코쿠노이와야 경유하는 버스요, 그거 오늘 운행하나요?"
"오늘까지 운행하는 것 맞습니다."
"오늘'까지' 맞죠? 안내문에는 11월 30일부터 운행한다고 되어있어서요."
"아, 네. 오늘 버스 운행하고 내일부터 운행 중지입니다."
하이고, 십년 감수했다. 감사하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은 다음, 나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버스를 기다렸다. 혹시라도 버스를 놓칠세라 밖에 나와서 기다렸는데, 어째 빗방울이 점점 굵어져갔다. 하는 수 없이 정류장 바로 옆에 있는 휴게실에 들어갔다.
휴게실이라고 해서 매점이 있거나 이런 건 아니고 그냥 말 그대로 휴게하는 곳, 일종의 대합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쉴 수 있도록 나무 테이블과 의자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사진으로 보니까 어째 바깥 날씨가 무지 화창해보이는데, 이때 정말 비가 좀 왔었다.
버스가 언제 오나 매서운 눈초리로 바깥을 노려보는 (장면을 연출한) 耿君의 셀프 카메라.
위 사진에서 손에 들고 있는 이 지도가 바로 히라이즈미 역에서 구한 히라이즈미 산책 가이드맵이다. 이 지도가 히라이즈미 일대를 돌아다니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히라이즈미를 여행하는 분들께는 꼭 역에서 지도를 가져갈 것을 권장하고 싶다.
아무래도 안에 들어와 있는게 불안해서 밖으로 나왔다. 마침 비도 좀 잦아들었다. 저 멀리 버스가 한 대 오는데, 보아하니 내가 타야하는 버스는 아니었다. 히라이즈미 시내를 순환하는 버스였는데, 기사 아저씨는 정류장에 서 있는 나를 보더니 "어디로 가세요?" 하고 물어보신다. "닷코쿠노이와야 가요!" 하고 말했더니, "아 네, 버스 곧 올 겁니다." 하고 말해주신다. 버스 정류장이 주차장 한 켠에 있다보니 관광버스도 들어온다. 가족 단위로 온 사람들도 있지만 연세가 많은 분들이 관광객의 대부분이다. 앗, 어느새 버스가 도착했다. 기사분에게 "닷코쿠노이와야 가는 버스지요?" 하고 여쭤보니 맞다고 하신다.
버스에 탑승하니 승객은 달랑 나 한 명뿐이었다. 모쓰지에서 닷코쿠노이와야로 가는 데에는 8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여느 버스 정류장 간 거리보다 더 먼 거리를 달리는 것이다. 처음 1, 2분간은 그냥 아무 말 안 하고 멍하니 차창 밖을 바라보며 다음 여행지에 대한 기대감을 부풀렸지만, 시간이 지나니까 좀 심심해지기도 하고, 버스 기사분하고 대화를 나누어보고 싶어졌다. 운행에 방해가 되지는 않을까 싶었지만 침 한 번 꿀꺽 삼키고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저 이 버스 오늘까지만 운행하지요?"
"예? 네네."
"아... 아까 안내문을 보았는데 오늘부터 중지라고 되어 있어서 깜짝 놀랐거든요..."
"아 그랬어요? 오늘까지는 운행해요."
"네, 저도 버스 회사에 전화해보니 그렇다고 하더라구요."
......
"근데 버스에 손님이 저밖에 없네요. 원래 이맘때 손님이 별로 없나요?"
"아무래도 그렇죠. 겨울 되어가고 하니까. 봄 되고 하면 승객이 또 많아져요. 요시쓰네 로망 노선이 인기가 많죠."
"아 네."
"닷코쿠노이와야 간다고 했죠?"
"네."
"그 닷코쿠노이와야 들어가면 절벽에 있는 건물이 있을 거예요. 거기 들어가면 이런저런 불상이 있긴 한데, 가서 천장을 꼭 보라고요. 중요한 볼거리는 천장에 있어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닷코쿠노이와야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버스 기사 아저씨는 여행 잘 하라고 말씀해주셨고, 나는 내리면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렸다.
떠나가는 버스의 뒷모습을 향해 인사를 하고 손을 흔들었다. 버스가 도로 위의 점이 되어 사라질 때까지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이따가 닷코쿠노이와야에서 주손지로 갈 때 한 번 더 이용하게 될 노선의 버스였는데, 어쩐지 유유히 사라지는 그 버스가 2008년의 '마지막 날의 버스'인 것만 같아보였다. 나같이 남들 잘 안다니는 여행지를 골라 돌아다니는 승객 외에는 아무도 타지 않았던 쓸쓸한 버스여서 더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다음 편에 계속
요시쓰네 처자의 묘에서 나와 아까 전에 갔었던 모쓰지 버스 정류장으로 돌아갔다. 이제 다음 행선지는 닷코쿠노이와야[達谷窟]. 닷코쿠노이와야는 아쿠로오[惡路王]라는 에미시의 수장이 살던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아쿠로오는 정이대장군 사카노우에노 다무라마로에 맞서 항전했던 아테루이이거나 그를 모델로 한 인물로 추정되고 있다. 그 아쿠로오의 근거지였던 바위 절벽 동굴에 세워놓은 비사문당(毘沙門堂)이 유명하다.
닷코쿠의 전설 01
- 마지막 날의 버스
耿君이 삼가 지음
버스 정류장으로 가니 다시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한다. 히라이즈미 역에 도착해서부터 비가 왔다가 개었다가 바람이 불었다가 멎었다가를 반복하는 변화무쌍한 날씨가 계속되었다. 후드 모자를 푹 뒤집어 쓰고 정류장에 있는 버스 시간표를 다시 확인했다. 그런데,

운행 중지기간
헤이세이 20년 11월 30일 ~ 4월 O일
뭐????? 11월 30일부터 운행 중지라고??? 그럼 난 버스를 탈 수 없다는 건가!!!
다급한 마음에 안내문에 적힌 전화번호로 얼른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긴장감을 높여주는 가운데 남성분이 전화를 받았다.
"네, 이와테 현 교통입니다."
"안녕하세요, 저 버스 운행 때문에 문의드리려고 하는데요."
"네. 말씀하세요."
"게이센카쿠에서 주손지까지 가는, 닷코쿠노이와야 경유하는 버스요, 그거 오늘 운행하나요?"
"오늘까지 운행하는 것 맞습니다."
"오늘'까지' 맞죠? 안내문에는 11월 30일부터 운행한다고 되어있어서요."
"아, 네. 오늘 버스 운행하고 내일부터 운행 중지입니다."
하이고, 십년 감수했다. 감사하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은 다음, 나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버스를 기다렸다. 혹시라도 버스를 놓칠세라 밖에 나와서 기다렸는데, 어째 빗방울이 점점 굵어져갔다. 하는 수 없이 정류장 바로 옆에 있는 휴게실에 들어갔다.



아무래도 안에 들어와 있는게 불안해서 밖으로 나왔다. 마침 비도 좀 잦아들었다. 저 멀리 버스가 한 대 오는데, 보아하니 내가 타야하는 버스는 아니었다. 히라이즈미 시내를 순환하는 버스였는데, 기사 아저씨는 정류장에 서 있는 나를 보더니 "어디로 가세요?" 하고 물어보신다. "닷코쿠노이와야 가요!" 하고 말했더니, "아 네, 버스 곧 올 겁니다." 하고 말해주신다. 버스 정류장이 주차장 한 켠에 있다보니 관광버스도 들어온다. 가족 단위로 온 사람들도 있지만 연세가 많은 분들이 관광객의 대부분이다. 앗, 어느새 버스가 도착했다. 기사분에게 "닷코쿠노이와야 가는 버스지요?" 하고 여쭤보니 맞다고 하신다.

"저 이 버스 오늘까지만 운행하지요?"
"예? 네네."
"아... 아까 안내문을 보았는데 오늘부터 중지라고 되어 있어서 깜짝 놀랐거든요..."
"아 그랬어요? 오늘까지는 운행해요."
"네, 저도 버스 회사에 전화해보니 그렇다고 하더라구요."
......
"근데 버스에 손님이 저밖에 없네요. 원래 이맘때 손님이 별로 없나요?"
"아무래도 그렇죠. 겨울 되어가고 하니까. 봄 되고 하면 승객이 또 많아져요. 요시쓰네 로망 노선이 인기가 많죠."
"아 네."
"닷코쿠노이와야 간다고 했죠?"
"네."
"그 닷코쿠노이와야 들어가면 절벽에 있는 건물이 있을 거예요. 거기 들어가면 이런저런 불상이 있긴 한데, 가서 천장을 꼭 보라고요. 중요한 볼거리는 천장에 있어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닷코쿠노이와야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버스 기사 아저씨는 여행 잘 하라고 말씀해주셨고, 나는 내리면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렸다.

耿君 識
다음 편에 계속
# by | 2009/02/09 01:13 | 일본에 가다 | 트랙백 | 핑백(3) | 덧글(4)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 목숨을 잃고 만 4살짜리 아이. 그들의 서글픈 이야기를 떠올리며 묘소 앞에 섰다. 묘석에서 진한 애잔함이 묻어나오는 것만 같다. 머리 숙여 합장하며 그들의 명복을 빌었다.耿君 識다음 편에 계속 ... more
... 지난 편에 이어서이번에 찾아가는 닷코쿠노이와야 비사문당에는 다음과 같은 전승이 전해온다. 800년경, 아쿠로오[惡路王], 아카가시라[赤頭], 다카마루[高丸] 등의 에미시들은 닷코쿠노이와야 ... more
... 미 여행의 전반부를 '정토의 바람', 후반부를 '황금의 나라'로 할 생각이어서 계획에 없었던 장인데, 닷코쿠에 대해 쓸 이야기가 많아져서 결국 별도의 장으로 탄생하였습니다.01 마지막 날의 버스02 닷코쿠노이와야 비사문당03 암면 대불04 두꺼비 연못의 벤자이텐05 히메를 기다리며 (1)06 히메를 기다리며 (2) 07 주먹밥과 부적* 황금의 나라: 오슈 후지와 ...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