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의 바람 10 - 요시쓰네 처자의 묘

지난 편에 이어서

요시쓰네가 오슈 히라이즈미로 들어왔을 때 동행했던 사람들 중에는 그의 정실부인과 자식도 포함되어 있었다. 요시쓰네는 그가 '판관'으로 임명된 후인 1184년 9월, 요리토모의 명에 따라 가와고에 시게요리[河越重賴]의 딸과 결혼하였다. 그 여인의 이름은 사료에 나와있지 않으나, 전승에 따르면 '사토고젠[鄕御前]'이란 이름으로 불렸다고 한다. 1185년, 요리토모는 요시쓰네 정벌을 선언하면서, 요시쓰네의 외척이라는 이유로 가와고에 시게요리의 영지를 몰수했고, 나중에는 시게요리 등을 주살하였다. 1186년, 사토는 요시쓰네가 교토에 잠복하고 있던 중 딸을 출산한다. 그리고 1187년, 남편 요시쓰네와 함께 오슈로 도망친다.

요시쓰네가 히라이즈미로 들어가 히데히라의 보호 아래에 있음을 알게 된 요리토모는 히데히라에게 압력을 넣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쓰노쿠니로부터 조정으로 납부되는 금 공납이나, 무쓰노쿠니로 유배된 조정 인사에 대한 트집을 잡다가, 9월에는 본격적으로 히데히라가 요시쓰네를 숨겨주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히데히라는 다른 마음을 품고 있지 않다고 항변하였으나, 요리토모는 조정에 오슈 후지와라 가문의 정세를 보고하는 등 계속 압박을 가해왔다.

그러던 1187년 11월, 히데히라가 병으로 숨을 거두고 만다. 요시쓰네가 히라이즈미로 들어온 지 9개월 만의 일이었다. 히데히라의 큰아들 구니히라[國衡]는 측실 소생이고, 둘째 아들 야스히라[泰衡]는 정실 소생이어서, 차기 당주는 야스히라가 내정되었다. 대신 구니히라에게는 장인 후지와라노 모토나리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게 했다. 히데히라는 죽기 전에 구니히라와 야스히라, 그리고 요시쓰네를 부른 다음, 이런 유언을 남겼다.

요시쓰네를 주군으로 모시고, 세 사람이 한 마음으로 결속하여, 요리토모의 공격에 대비해다오.

그리고 이듬해인 1188년, 히데히라가 죽고 난 뒤 요리토모의 압력은 더욱 집요해졌다. 요리토모는 새 당주 야스히라와 후견인 모토나리에게 요시쓰네를 토벌하라는 조정의 선지(宣旨)를 2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요청하였다. 야스히라는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요시쓰네를 죽이는 대신, 친족간의 대립을 견뎌내야 했다. 1189년 2월에는 요시쓰네파에 해당하는 자신의 동생 요리히라[賴衡]를 살해했는데, 이는 요시쓰네파의 친족을 죽임으로써 자신은 요시쓰네와 관련이 없고 조정에 반할 뜻이 없음을 요리토모에 어필하려 했던 것이 아닌가 하고 나는 생각했다.

그렇다고 해서 물러날 요리토모가 아니었다. 가마쿠라 측에서는 2월 22일, 야스히라가 요시쓰네와 결탁하여 반역을 도모하고 있다고 단정지은 후, 조정에 오슈 후지와라 가문을 토벌하는 윤지를 신청하기에 이르렀다. 이 선지 신청은 2월, 3월, 4월에 이르기까지 집요하게 이루어졌고, 마침내 윤4월 조정에서는 야스히라를 토벌하라는 선지를 내리는 일을 본격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 불안해진 야스히라는 결국 이에 굴복하고 말았다. 윤4월 30일, 야스히라는 수백 기병으로 요시쓰네가 머물던 고로모가와 관[衣川館]을 습격했다. 이 고로모가와 관은 다카다치[高館]라고도 불렸다. 요시쓰네의 부하들은 결사 항전했으나 결국 하나둘 목숨을 잃었고, 관이 포위당하자 요시쓰네는 정부인과 이제 4살이 된 딸을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때 요시쓰네의 나이 31세였다.

정토의 바람  10
- 요시쓰네 처자의 묘

耿君이 삼가 지음


이제 요시쓰네가 최후를 맞이할 때 함께 목숨을 잃었던 정부인 '사토고젠'과 그들의 네 살난 딸이 묻힌 묘소로 찾아가보자. 긴케이 산으로 가기 전, 모쓰지 앞에서 히라이즈미 역 쪽으로 난 길을 바라보았다. 아늑하게 자리잡은 마을이 포근해보인다.
묘소로 가는 길에는 무사시보[武藏坊]라는 이름의 호텔이 있었다. 요시쓰네의 충성스런 심복 무사시보 벤케이[弁慶]에서 그 상호를 땄을 것이리라. 일본은 어딜 가도 온천이 있다는 장난스러운 말이 있는데, 여기 히라이즈미에도 온천이 있어서 이런 관광 호텔이 세워져 있었다. 관광 호텔 말고도 동네 사람들이 애용하는 대중목욕탕 같은 온천장도 있었다.
오르막길을 걸어가다보니 길 한켠에 이정표가 세워져 있어서 얼른 달려가보았다. 긴케이 산(요시쓰네의 처자의 묘)이 왼쪽으로 200m 전방에 있다고 한다. 한자로는 '妻子'라고 해놓았지만 영어로는 wife and daughter라고 적혀 있다.
빗물로 촉촉해진 아스팔트길을 따라 산등성이를 올라갔다. 길가에 '미나모토노 요시쓰네 공 처자의 묘'라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길을 가다가 오른쪽으로 난 아스팔트가 깔린 좁은 길로 들어가면 긴케이 산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긴케이 산[金鷄山]. 한자 뜻을 새기면 '금닭 산'이다. 왜 산 이름이 금닭인가 싶어서 안내문을 읽어보았다.
히라이즈미의 중심부에 위치한 표고 약 100m의 원추형의 야트막한 산입니다.
'2대 모토히라가 황금으로 암수 닭을 지어, 산중에 이를 묻어 히라이즈미를 진호(鎭護)했다'는 전승이 있으며, 산 정상에는 12세기의 경총(經塚: 경전을 묻은 무덤)의 봉분이 남아 있습니다. 동쪽 기슭에는 하나다테 폐사[花立廢寺]라 불리는 사원 터가 있습니다. 모쓰지의 동쪽을 가르는 토루의 연장선상에, 이 산 정상이 위치하는 데에서, 모쓰지와 그 주변의 마을은, 긴케이 산을 기준으로 하여 조성된 것이라고 추정됩니다.
또, 무료코인[無量光院] 터에서 보는 긴케이 산은, 불교의 서방정토의 경관을 나타내고 있다 여겨져, 이러한 신앙의 상징으로서도 중요한 산입니다.

이 도리이[鳥居] 문을 지나면 긴케이 산 안쪽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 산문 바로 옆에 요시쓰네의 처자의 묘가 있었다.
안내문 내용을 아래에 옮겨본다.
미나모토노 요시쓰네 공 처자의 묘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의 위압에 의해 후지와라노 야스히라가 다카다치에서 요시쓰네 공을 습격했다. 요시쓰네 공은 기타노카타[北の方]와 유아를 살해하고, 자해했다고 전한다. 때는 헤이안 시대인 분지 5년(서기 1189년) 윤4월 30일, 31세로 최후를 마쳤다. 이 묘는, 다카다치에서 슬프게도 이슬로 사라진 처자의 묘라고 전해지고 있는데, 원래는 천수원(千手院) 경내로, 여기서부터 약 300미터 정도 서북쪽 긴케이산 산록에 있었으나, 여기로 묘석을 옮겨서 공양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이 묘소 바로 옆에 천수당이라고 하는 불당이 있는데, 위의 천수원이라고 하는 것은 그 천수당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기타노카타[北の方]라는 말은 귀인의 아내를 부르는 호칭인데, 히라이즈미에서 요시쓰네의 정부인을 기타노카타라고 불렀다고 한다.
요시쓰네 처자의 묘의 모습. 안내문에 적혀 있는 대로 공양이 끊임없이 이루어지는지, 묘소 앞에는 캔 같은 것들이 놓여 있었다.

요시쓰네와 결혼한 지 1년 만에 친정 가문 사람들을 잃고, 또 남편을 따라 변장까지 하면서 험한 길을 건너 오슈 히라이즈미까지 왔으며, 결국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해야 했던 슬픈 운명의 여인. 그리고 아무 것도 모를 어린 나이에 목숨을 잃고 만 4살짜리 아이. 그들의 서글픈 이야기를 떠올리며 묘소 앞에 섰다. 묘석에서 진한 애잔함이 묻어나오는 것만 같다. 머리 숙여 합장하며 그들의 명복을 빌었다.

耿君 識

다음 편에 계속

by 耿君 | 2009/02/06 21:41 | 일본에 가다 | 트랙백 | 핑백(3)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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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토의 바람 10에 이어서요시쓰네 처자의 묘에서 나와 아까 전에 갔었던 모쓰지 버스 정류장으로 돌아갔다. 이제 다음 행선지는 닷코쿠노이와야[達谷窟]. 닷코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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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악희惡戱 at 2009/02/07 00:15
헐퀴!!! 딸이었던건가효????
인터넷 곳곳에서 가메즈루라는 아들이라고 해서 여태까지 아들로 알고 있었는데요;;;;
Commented by 耿君 at 2009/02/07 00:23
아 그건 군담전기소설 『기케이키[義經記]』에 나오는 허구입니다.
Commented by 악희惡戱 at 2009/02/07 00:35
아, 이래서 인터넷의 떡밥은 덥썩 물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_-;;;
Commented by leopord at 2009/02/07 12:29
일본 역사를 보면 골육상쟁 동족상잔 이런 경우가 너무 쉽게 나와서(이게 뭐 일본만의 얘기겠냐만) 보기가 괴롭기도 합니다. 요시쓰네의 경우엔 비장감이 더하더군요.

그러고 보니 데츠카 오사무의 <불새>에도 요시쓰네 전설이 나오네요. 벤케이가 에피소드의 주인공으로 나왔는데 참 재밌었습니다.ㅎㅎ
Commented by 耿君 at 2009/02/07 15:37
참 입맛 쓴 이야기들이죠. 요시쓰네 전설은 정말 공전의 히트를 치는 떡밥(?)이죠 ㅋㅋ
Commented by 진성당거사 at 2009/02/07 14:40
비련과 비운의 여인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하는군요. 공양은 끊이지 않는다지만, 수백년 전의 한(恨)이 맺혀서인지 보기만해도 진한 우수에 젖게 되네요. 사진만 보는 제가 이런데 직접 가서 보면 더할것 같은 기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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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한가지 실없는 질문. 묘석을 옮겼다는 말은, 묘는 제자리에 그대로 있다는 뜻일까요? 일본의 장묘문화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지만, 대체로 화장해서 납골을 장방형 묘석 밑에 봉안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궁금합니다.
Commented by 耿君 at 2009/02/07 15:36
묘 전체를 옮겼다는 것이겠지요? ㅎㅎ 설마 묘만 놔두고 돌만 옮길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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