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2월 01일
정토의 바람 06 - 모쓰지 이야기 (2)
지난 편에 이어서
모쓰지는 절에 전해오는 기록에 따르면, 가쇼 3년(850) 자각대사(慈覺大師) 엔닌[圓仁]에 의해 처음 세워졌다고 한다. (장보고와 관련해서 자주 언급되는 바로 그 엔닌이다.) 도호쿠 지역을 돌아다니던 엔닌이 히라이즈미 근처에 왔는데, 길을 가다보니 온통 안개에 뒤덮여 더 발을 들일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당황해하던 엔닌은 문득 발밑을 내려다보았고, 땅바닥에 점점이 하얀 털이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엔닌은 그 털을 따라 앞으로 나아갔고, 그 앞에는 흰 사슴[白鹿]이 있었다고 한다. 가까이 가니까 사슴은 사라지고, 백발의 노인이 나타나 이 땅에 당우(堂宇)를 건립하여 영장(靈場)으로 삼으라고 말하였다.
엔닌은 이 때 만난 흰 털을 가진 사슴, 그리고 백발 노인이 약사여래의 화신이라고 생각했고, 절을 하나 지어 이곳의 이름을 이오잔[醫王山] 가쇼지[嘉祥寺]라고 했다 한다. 산호에 나오는 의왕(醫王)은 약사여래를 지칭한다. 그리고 엔닌이 흰 사슴의 털[毛]을 쫓아 산길을 넘었다[越]고 해서 절 이름은 모쓰지[毛越寺]라고도 불리게 되었다. 898년에 사찰이 정비되기는 했지만, 이후 오랫동안 황폐해져 있다가, 오슈 후지와라 가문의 2대 당주 후지와라노 모토히라가 1150년에 가쇼지의 조영을 시작하여, 그 아들인 3대 당주 히데히라가 공사를 완료하였다고 한다. 모토히라는 또한 가쇼지 옆에 금당 엔류지를 건립하였는데, 만보(萬寶)를 들여 조영한 칙원사(勅願寺)였다고 한다. 이리하여 오슈 후지와라의 시대에 모쓰지 가람의 완벽한 형태가 갖추어졌다.
정토의 바람 06
- 모쓰지 이야기 (2)
耿君이 삼가 지음
다음에 다다른 곳은 가이산도[開山堂]. 모쓰지를 개창한 자각대사 엔닌을 모신 묘당이다.
안내문에는 엔닌에 대한 설명이 실려 있다. 그 부분을 번역하면 아래와 같다.
자각대사는, 천태종 제3대 좌주가 되었고, 생전의 업적을 칭송받아, 일본 최초의 대사 칭호를 받았다. 당(唐)에서의 9년간의 기행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는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현장 삼장의 『서유기』와 함께, 3대 여행기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가이산도 안에 모셔진 자각대사 엔닌 스님의 상. 그리고 그 왼쪽에는 매우 중요한 그림이 하나 걸려 있다.
바로 오슈 후지와라 가문 3대가 한꺼번에 그려진 그림이다. 그림의 윗쪽에 그려진 인물이 1대 당주 후지와라노 기요히라, 아래 오른쪽에 있는 인물이 2대 모토히라, 그리고 그 왼쪽에 두건을 머리에 두른 인물이 3대 히데히라이다.
개산당에서 나와 오른쪽으로 가면 옛 건물터가 나온다. 여기가 바로 엔닌이 처음 당우를 조성하고, 모토히라가 조영을 시작했다는 가쇼지[嘉祥寺] 터이다. 건물 기단은 흙으로 돋워져 있으며, 그 위에 주춧돌이 놓이고 기둥이 세워졌다. 규모는 금당 엔류지와 거의 같다. 가쇼지라는 이름은 개창 당시의 연호 '가쇼'를 따라 지은 것이다.
가쇼지를 지나 아래로 내려가면 또 하나의 건물 터가 나온다. 여기는 바로 강당(講堂) 터.
강당 터에 대한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그리고 예전의 금당(金堂)이었던 금당 엔류지[圓隆寺]에 도착했다. 그 터의 규모와 생김새를 통해 건물이 얼마나 웅장하고 멋있었을지 짐작해보았다. 『아즈마카가미』에서도 '우리나라에서 무쌍[我朝無雙]'이라 할 정도로 각종 보물을 써서 화려하게 꾸민 사찰 건축이었다고 하며, 내부에는 운케이[雲慶]가 만든 장륙약사여래가 모셔져 있었다고 한다. 모쓰지의 중심 건물이었던 이 당우는 동서로 회랑이 나 있었고, 그 끝에는 종루와 경루(經樓)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금당 엔류지는 앞서도 언급되었던 가로쿠 2년(1226)의 화재로 소실되었다. 강당은 이후 다시 재건되었지만 엔류지는 재건되지 않았다.
가쇼지와 달리 석조 기단을 쌓아 그 위에 주춧돌을 놓고 건물을 올렸다. 한때는 아조무쌍이란 말을 듣는 호화로운 건물이었지만, 이제는 그런 자취를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엔류지 터에 있던 주춧돌 하나를 클로즈업해보았다. 주춧돌을 보니 기둥으로 올린 나무도 상당히 굵은 것이었을 거라 생각된다. 균열이 생긴 주춧돌을 한없이 바라보았다. 옛 모쓰지 건물들을 다시 보지 못한다는 게 너무도 아쉬워졌다.
금당 엔류지를 나와 다시 연못가를 따라 내려오니 개울 하나가 눈에 띈다. 그 개울 주변에는 유난히도 야릇한 모양의 돌들이 많이 배치되어 있었다. 경관을 위해 의도적으로 만든 물길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알고보니 이는 '야리미즈[遣水]', 즉 금당 앞에 있는 거대한 연못 '오이즈미가이케[大泉が池]'에 물을 대는 개울이었다. 정원을 발굴했을 때 옛날 모습 그대로 발굴되었다고 하며, 헤이안 시대의 야리미즈 유구로는 유일하게 발견된 것이라고 한다. 수로 바닥에는 옥돌이 깔려있고, 물을 넘기고 막고 굽이치게 하는 여러가지 돌 구조물이 보이는데, 이 야리미즈는 헤이안 시대의 정원 만들기 지침서인 『작정기(作庭記)』에 나오는 시설들을 거의 다 충족시키고 있다 한다.
특히 이 야리미즈에서는 '곡수의 연[曲水の宴]'이 행해졌는데, 1986년 후지와라노 히데히라 공 800주기를 기념하는 행사로 재연되었다고 한다. 야리미즈 개울에 잔을 띄우고, 그 잔이 흘러오는 동안 와카[和歌]를 읊고, 곡이 끝나면 잔을 드는 식인 이 곡수의 연은 헤이안 시대에 중국에서 들어와 일본 귀족들 사이에서 매우 유행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포석정에 곡수의 연을 즐길 수 있는 석조 구조물이 있었던 게 기억이 난다.
다음 편에 계속
모쓰지는 절에 전해오는 기록에 따르면, 가쇼 3년(850) 자각대사(慈覺大師) 엔닌[圓仁]에 의해 처음 세워졌다고 한다. (장보고와 관련해서 자주 언급되는 바로 그 엔닌이다.) 도호쿠 지역을 돌아다니던 엔닌이 히라이즈미 근처에 왔는데, 길을 가다보니 온통 안개에 뒤덮여 더 발을 들일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당황해하던 엔닌은 문득 발밑을 내려다보았고, 땅바닥에 점점이 하얀 털이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엔닌은 그 털을 따라 앞으로 나아갔고, 그 앞에는 흰 사슴[白鹿]이 있었다고 한다. 가까이 가니까 사슴은 사라지고, 백발의 노인이 나타나 이 땅에 당우(堂宇)를 건립하여 영장(靈場)으로 삼으라고 말하였다.
엔닌은 이 때 만난 흰 털을 가진 사슴, 그리고 백발 노인이 약사여래의 화신이라고 생각했고, 절을 하나 지어 이곳의 이름을 이오잔[醫王山] 가쇼지[嘉祥寺]라고 했다 한다. 산호에 나오는 의왕(醫王)은 약사여래를 지칭한다. 그리고 엔닌이 흰 사슴의 털[毛]을 쫓아 산길을 넘었다[越]고 해서 절 이름은 모쓰지[毛越寺]라고도 불리게 되었다. 898년에 사찰이 정비되기는 했지만, 이후 오랫동안 황폐해져 있다가, 오슈 후지와라 가문의 2대 당주 후지와라노 모토히라가 1150년에 가쇼지의 조영을 시작하여, 그 아들인 3대 당주 히데히라가 공사를 완료하였다고 한다. 모토히라는 또한 가쇼지 옆에 금당 엔류지를 건립하였는데, 만보(萬寶)를 들여 조영한 칙원사(勅願寺)였다고 한다. 이리하여 오슈 후지와라의 시대에 모쓰지 가람의 완벽한 형태가 갖추어졌다.
정토의 바람 06
- 모쓰지 이야기 (2)
耿君이 삼가 지음


자각대사는, 천태종 제3대 좌주가 되었고, 생전의 업적을 칭송받아, 일본 최초의 대사 칭호를 받았다. 당(唐)에서의 9년간의 기행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는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현장 삼장의 『서유기』와 함께, 3대 여행기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본존은 태금양부대일여래(胎金兩部大日如來). 불법을 강론하고 듣는 당사이다. 또 관정(灌頂)이라는 밀교의식을 행하는 오우[奧羽]의 관실(灌室)이었다고 한다. 정면 5칸 19.1m, 측면 4칸 15.1m의 건물로 주춧돌 34개가 완전히 존재한다. 가로쿠[嘉祿]의 화재(1226년에 발생 - 역자) 이후 재건, 덴쇼 원년(1573)의 싸움으로 인한 화재로 소실되었다.






耿君 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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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9/02/01 19:17 | 일본에 가다 | 트랙백 | 핑백(4)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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