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1월 31일
정토의 바람 04 - 간지자이오인 터
지난 편에 이어서
먼저 찾아간 곳은 간지자이오인[觀自在王院] 터였다. 간지자이오인은 남북 약 240m, 동서 약 120m의 규모의 절로, 경내에 대아미타당과 소아미타당이 있었으며, 그 앞에는 마이즈루가이케[舞鶴ヶ池]라는 연못이 조성된 정토정원(淨土庭園)이 있었다고 한다. 가마쿠라 시대의 역사서 『아즈마카가미[吾妻鏡]』에 따르면, 대아미타당 내부 벽에는 교토의 명소 그림이 그려져 있고, 불단은 은으로 되어 있고 고란(高欄)은 마금(磨金)으로 되어 있었다고 전한다. 하지만 오늘날 그 화려했던 사원의 건물들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고, 대신 사적 정비를 통해 건물 유구와 정원 터가 공원으로 가꾸어졌다.
이 간지자이오인은 오슈 후지와라 가문의 2대 당주 후지와라노 모토히라[藤原基衡]의 아내가 12세기 중엽에 건립한 사원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모토히라의 아내는 아베 가문의 사람이었다. 전구년 전쟁이 끝나고, 미나모토 군에 투항하여 포로가 되고 나중에 귀양을 가게 되는 아베노 무네토[安倍宗任]의 딸이 바로 그녀이다. 옛 아베 가문과 오슈 후지와라 가문의 연결 고리를 확인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예라고 하겠다. 여기서 가계도를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다.
아베노 요리요시(요리토키로 개명)
│
┌───────┴───┬───────────┐
│ │ │
아베노 사다토 아베노 무네토 유카이치노마에 ──┬── 후지와라노 쓰네키요
(요리요시의 차남) (요리요시의 3남) (사다토의 여동생) │
│ 후지와라노 기요히라
│ (오슈 후지와라 1대)
│ │
딸 ──────┬─── 후지와라노 모토히라
(모토히라의 부인) │ (오슈 후지와라 2대)
│
후지와라노 히데히라
(오슈 후지와라 3대)
정토의 바람 04
- 간지자이오인 터
耿君이 삼가 지음
이 황량한 벌판 위에 원래는 아름다운 사찰 건물이 세워져 있었으리라. 애잔한 감상에 젖어 있자니 맑은 하늘에서 가는 빗방울이 떨어진다. 패딩 점퍼에 달린 후드 모자를 푹 뒤집어쓰고 앞으로 돌진했다.
간지자이오인 터 앞에 세워져 있는 거대한 안내판. 세워져 있지 않고 누워있는 것이어서 인상적이었다. 왼편에 보이는 것이 간지자이오인 터 전역의 지도. 사원의 둘레는 토벽으로 둘러져 있었고, 서쪽과 남쪽에 문이 있었다고 한다. 남문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면 거대한 연못 마이즈루가이케가 보이고, 그 연못 너머로 대아미타당과 소아미타당이 있었다. 옆에는 안내문이 적혀 있는데, 『아즈마카가미』에 나오는 간지자이오인의 모습에 대한 설명과 절의 유래 등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가만 보면 일본의 이러한 유적 안내문 말미에는 'OOO교육위원회'가 그 주체로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안내판 오른쪽 아래에는 '자유롭게 가져 가세요'라고 적힌 배부 프린트물 통이 있어서, 통의 입구를 열고 원하는 대로 종이를 가져갈 수 있게 했다. 프린트물에는 역시 간지자이오인에 대한 설명문과 유적 안내도가 실려 있다.
사진의 왼쪽, 돌기둥 두 개가 보이는 부분이 남문 터이다. 이 지점에서 굴립주(堀立柱: 기둥 뿌리를 땅에 그대로 박은 기둥)의 밑둥이 동서 각각 한 개씩, 서로 4.5m의 간격을 두고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 문을 지나서 절 경내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
남문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면 이렇게 생긴 연못이 하나 등장한다. 이것이 바로 마이즈루가이케. 이렇게 생긴 연못과 정원이 '정토정원' 또는 '정토식 정원'이라고 한다. 정원을 보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니, 세 명의 사람들이 남문 터 앞에 서서 구경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모습을 보아하니 유적 탐방을 하러 온 사람들이었다. 다들 어쩐지 연구원 내지는 학자들 같아 보였는데, 구경을 하면서 뭔가를 설명하는 듯도 보였다. 이후로도 간지자이오인 터를 돌아다니는 동안 나는 그 세 사람과 자주 마주치게 되었다.
다시 연못 앞으로 다가갔다. '연못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안내판이 연못 앞에 세워져 있다. 내용을 번역해본다.
오는 길에 서 있는 표지판들은 잘 되어 있었지만, 아무래도 이런 안내판의 관리는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다. 안내판이 좀 지저분한 게 아쉬웠다. 사진 위로 보이는 것이 바로 연못 속에 조성된 섬. 지금은 길쭉한 섬의 형태를 이루고 있지만, 원래는 그렇게 길쭉하지는 않았고, 후대에 이 지역이 논으로 바뀌면서 섬 부분이 깎여나가면서 이렇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나름대로 축조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하려고 노력을 했다고. 중세에는 이 섬 동쪽에 무덤이 만들어져, 철제 보탑이 세워졌다. 보탑은 덮개돌이 파손된 상태로 오늘날까지 전해져, 인근 모쓰지의 자료관으로 옮겨졌는데, 그 보탑에 1355년 봉납했다는 기록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더불어서 판비(板碑)들도 발굴되었다고.
연못과 섬의 전경. 나는 연못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아름다운 풍광을 눈과 사진기 속에 담았다.
다른 쪽에서 찍은 연못과 섬의 사진. 사진 기술이 모자란 탓인지 원하는 풍경 모두를 한꺼번에 담을 수 없어, 아쉬운 대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연신 사진을 찍었다. 바람이 조금 세게 불자, 연못 위에 자글자글 파문이 인다.
연못을 구경한 다음 서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서쪽에는 옛 흙담 자리로 여겨지는 낮은 둔덕이 있었다. 둔덕 위에 올라가서 다시 한 번 연못을 바라보았다. 낙엽이 많이 떨어져있는 것이 아쉬웠다. 가을에 오면 훨씬 더 멋있을 것 같았다.
흙담 둔덕은 북쪽으로 쭉 뻗어있었고, 담 밖으로는 자갈밭이 있었다. 그런데 자갈밭 사이로 안내판도 보이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말뚝들이 보였다. 나는 둔덕에서 폴짝 뛰어내려 자갈밭으로 걸어들어갔다.
자갈밭 사이로 솟아있는 나무 기둥들은 바로 '차고[車宿]' 터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이 차고는 헤이안 시대 상류 계층들이 이용하던 수레를 주차 보관하는 장소로, 여기는 간지자이오인, 모쓰지 등을 방문하는 후지와라 가문 측 상류층이나 기타 귀족들의 수레가 들어오던 곳으로 추정되고 있다. 설명문을 읽고 사진을 찍으려는데, 아까의 세 사람이 차고 가까이에 왔다. 사진 왼쪽 윗부분에 찍힌 사람의 모습이 그 사람들의 것이다.
흙담 둔덕의 북쪽 끝에는 아까 남문 터와 같은 식의 유적 표시가 되어 있다. 간지자이오인에는 서문과 남문, 두 개의 출입구가 있다고 했는데, 이것이 바로 서문 터. 유적 발굴 조사에 따르면 망루의 역할도 하는 고층 문이었다고 한다.
서문 터를 지나 연못 위로 올라갔다. 여기는 대아미타당 터. 경내에서 최대 규모의 건물이었다는 대아미타당은 방형(方形)의 불당으로, 내부에는 불단이 은으로 되어 있고, 단 위의 난간은 금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화려한 건물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취를 감추었고 이렇게 터만 남아있다.
그 오른쪽에 있는 소아미타당 터. 어쩐지 쓸쓸한 느낌이 든다.
대아미타당 터 한켠에는 나무 아래 석불이 하나 서 있다. 원래 이 절에 있었던 불상인지, 아니면 후대 사람들이 조각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도 옛 절터에 모셔져 있는 석불이 나를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간지자이오인은 1573년에 전쟁으로 인하여 불타 사라졌는데, 에도 시대 교호 연간에 옛 대아미타당 자리에 작은 불당을 새로 세웠다. 위 사진에 보이는 건물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이 절터 북쪽 귀퉁이에는 이 간지자이오인을 세운 모토히라 부인의 묘비가 서 있다. 매년 5월 4일마다, 모토히라의 부인의 넋을 기리는 '나키마쓰리(哭きまつり: 곡하는 제사)'라는 이름의 법요(法要)가 모쓰지에서 열린다고 한다.
다시 연못 쪽으로 가니 이번에는 한눈에 봐도 인위적인 구조인 것 같아 보이는 돌무더기가 보였다. 이 부분은 다키이시구미[瀧石組]라고 불리는데, 연못 서쪽 가장자리를 폭포가 있는 지형처럼 꾸며놓은 돌 구조물을 말한다. 간지자이오인의 연못은 인공 연못이므로, 서쪽 근처에 있는 벤텐이케[弁天池]라는 연못에서 굽이치는 수로를 만들어 물을 끌어들이고, 그것을 이 다키이시구미를 통하여 폭포처럼 쏟아내려 연못으로 나오게 했다고 한다. 발굴 중에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어서 위 사진과 같이 복원해놓았다고 한다.
나는 한참동안 간지자이오인의 정원을 맴돌며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흐릿한 먹구름 사이로 햇빛이 새어나오면서 정원의 연못으로 쏟아지고 있었다.
다음 편에 계속
먼저 찾아간 곳은 간지자이오인[觀自在王院] 터였다. 간지자이오인은 남북 약 240m, 동서 약 120m의 규모의 절로, 경내에 대아미타당과 소아미타당이 있었으며, 그 앞에는 마이즈루가이케[舞鶴ヶ池]라는 연못이 조성된 정토정원(淨土庭園)이 있었다고 한다. 가마쿠라 시대의 역사서 『아즈마카가미[吾妻鏡]』에 따르면, 대아미타당 내부 벽에는 교토의 명소 그림이 그려져 있고, 불단은 은으로 되어 있고 고란(高欄)은 마금(磨金)으로 되어 있었다고 전한다. 하지만 오늘날 그 화려했던 사원의 건물들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고, 대신 사적 정비를 통해 건물 유구와 정원 터가 공원으로 가꾸어졌다.
이 간지자이오인은 오슈 후지와라 가문의 2대 당주 후지와라노 모토히라[藤原基衡]의 아내가 12세기 중엽에 건립한 사원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모토히라의 아내는 아베 가문의 사람이었다. 전구년 전쟁이 끝나고, 미나모토 군에 투항하여 포로가 되고 나중에 귀양을 가게 되는 아베노 무네토[安倍宗任]의 딸이 바로 그녀이다. 옛 아베 가문과 오슈 후지와라 가문의 연결 고리를 확인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예라고 하겠다. 여기서 가계도를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다.
아베노 요리요시(요리토키로 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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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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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노 사다토 아베노 무네토 유카이치노마에 ──┬── 후지와라노 쓰네키요
(요리요시의 차남) (요리요시의 3남) (사다토의 여동생) │
│ 후지와라노 기요히라
│ (오슈 후지와라 1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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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 후지와라노 모토히라
(모토히라의 부인) │ (오슈 후지와라 2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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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와라노 히데히라
(오슈 후지와라 3대)
정토의 바람 04
- 간지자이오인 터
耿君이 삼가 지음





이 연못은 간지자이오인의 대·소 아미타당 등, 건축군의 장엄함을 목적으로, 그 남쪽 전면에 전개한 것이다. 남북 길이 110m, 동서 길이 105m, 총면적은 약 9,000㎡, 그 남동쪽에 동서 35m, 남북 10m, 넓이 300㎡ 정도의 섬이 있다.
원래부터 있었던 서북쪽에서 동남쪽에 걸쳐 완만하게 경사져 있는 계곡 지형을 이용하여, 남에서 동에 걸쳐 흙으로 둑을 쌓아 물을 채운 것으로, 섬은 상층부를 조금 쌓아올린 것으로 여겨진다.
쇼와 48년(1973)도부터 49년도에 걸쳐, 이전에 오랫동안 무논이 되어 있던 연못 유적을 준설하고, 연못 물가의 바닥돌을 검출하고, 연못 속의 경석(景石)이 넘어져 있는 것만 몇개를 원래의 모습에 가깝게 복원을 시행했다. 연못 기슭의 옥돌을 깐 들쑥날쑥한 연못 가장자리와, 그곳에 굴러다니는 돌 구조물 같은 것은 대략 모쓰지[毛越寺]와 유사한 점이 느껴진다.
수위는 동북쪽 구석에서 검출된 이층으로 된 연못 가장자리 중, 상층부(조금 시기가 늦은 것으로, 옥돌 알갱이가 꽤 크다)의 높이와, 각 장소의 경석의 모습을 고려하여, 해발 34.90m가 채택되고 있다. 물가의 선은 자연의 호수가 같은 넉넉한 곡선을 그리고 있으며, 돌 모양도 작위적이지 않고 아름답다.












耿君 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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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지자이오인 터[觀自在王院跡]
주소: 岩手県西磐井郡平泉町平泉字志羅山
찾아가는 길: 히라이즈미 역에서 도보로 10분 (지도 참조)
개방시간: 24시간
입장료: 없음

찾아가는 길: 히라이즈미 역에서 도보로 10분 (지도 참조)
개방시간: 24시간
입장료: 없음
# by | 2009/01/31 11:19 | 일본에 가다 | 트랙백 | 핑백(3)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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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편에 이어서다음은 간지자이오인 바로 옆에 있는 모쓰지[毛越寺]를 구경할 차례. 毛越寺라는 한자를 모쓰지(もうつうじ)라고 읽는 것이 매우 특이하다. 원래 越자는 에쓰, 오쓰로는 읽혀도 ... more
... 은 국내에 거의 잘 소개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름대로 야심차게 준비한 포스팅이었습니다.01 히라이즈미 가는 길02 후삼년 전쟁과 오슈 후지와라 가문03 이것은 정토의 바람?04 간지자이오인 터05 모쓰지 이야기 (1)06 모쓰지 이야기 (2)07 모쓰지 이야기 (3)08 스즈카케노 미치09 요시쓰네와 히라이즈미10 요시쓰네 처자의 묘* 닷코쿠의 전설: ...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