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7월 06일
묵태씨, 묵자
백이, 숙제는 고죽에 있었는데[*], 서백이 노인 모시기를 잘한다는 것을 듣고, 함께 찾아갔다.삼가주본 사기에는 [*] 부분에 주가 달려 있는데 그 주의 내용인즉슨 다음과 같습니다.
집해(集解)에서 응소(應邵)가 말하기를, '요서 영지에 있다' 하였다. 정의(正義)에서 괄지지(括地志)에 이르기를, '고죽 고성(孤竹故城)은 평주(平州) 노룡현(盧龍縣) 남쪽 12리에 있으니, 은(殷) 때의 제후 고죽국이다. 성은 묵태(墨胎)이다.
기록상 묵태씨를 가지고 있는 인물은 묵태초와 백이, 숙제 외에 한 명이 더 있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묵자입니다. 묵자의 성은 묵(墨)이고 이름이 적(翟)인데, 무슨 말인가 싶으시겠지만, 사정인즉 다음과 같습니다. 가장 전통적이고 일반적으로는 묵자의 이름을 묵적이라고 합니다. 여씨춘추, 회남자, 사기의 맹자순경열전에 '묵적'이라는 이름이 나옵니다. 그런데 임보(林甫)가 812년에 펴낸 『원화성찬(元和姓纂)』에 따르면, 묵적은 본래 고죽군 집안의 후손이고, 본래 묵태씨였다가 성씨를 한 글자로 줄여 묵씨라 칭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묵자의 성이 사실은 적(翟)씨(공치규, <북산이문>)이며, 이름이 적오(翟烏)라는 설도 있고(이세진, <낭환기>), 지금은 성씨를 이름으로 삼았다(주량공, <고수옥서영>)는 등의 묵자적씨설이 제기되어 있고, 묵은 성씨가 아닌 도(道) 내지는 가(家)의 명칭이라고 보는 경향이 여기에 겹쳐집니다. 더 나아가서 묵도 적도 이름자가 아니며, '묵적'이라는 말 자체가 맥적(貊狄) 혹은 만적(蠻狄)의 음차라는 설도 있습니다. 고대 5형 중 하나인 묵형에서 왔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상의 내용을 보았을 때, 고죽국의 군성이 묵태씨라는 말은 거슬러올라가면 대략 한(漢)대부터 나오기 시작하는 것 같으며, 당(唐)대 쯤이 되면 묵태초, 백이(묵태윤), 숙제(묵태치), 그리고 그 후손인 묵자(묵적)를 연결시키는 묵태씨에 대한 정보가 형성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이 내용이 과연 후대의 지어낸 말인지, 예전부터 전해오는 이야기에 대한 전언인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그런데, 글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중국어판 위키백과 '묵태초' 항목을 살펴보니 뭔가 달라진 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묵태초 항목이 '고죽후 아미(孤竹侯亞微)'라는 항목으로 이동하며, 고죽후 아미 항목에는 기존의 묵태초 항목에 들어있던 컨텐츠에 추가된 내용들이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나와있지 않았던 묵태초의 둘째 아들 이름도 묵태풍(墨胎馮)으로 되어 있고, 묵태초의 아버지 이름은 묵태죽유(墨胎竹猷)라 되어 있습니다. 묵태초의 명칭은 고죽후 아미로 되어 있고 고죽국의 7대 임금이라고 합니다. 그 아버지 죽유는 고죽후 부정(父丁), 그 둘째 아들의 군호는 고죽후 아빙(亞憑)입니다. 누군가가 수정을 해놓은 모양인데, 그 근거한 내용이 궁금해서 이리저리 살펴보았더니 참고문헌으로 새로운 책이 달려 있었습니다.
《亞微罍考釋》
罍는 그릇의 일종인데, 아마도 고고학적으로 발굴된 아미뢰(亞微罍)라는 유물을 분석한 글이 있는 모양입니다. 그렇다면 새로운 학술 연구의 결과를 반영한 것일까요? 도대체 이 책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아무래도 위키백과를 수정한 유저에게 문의해보아야겠습니다.
# by | 2008/07/06 17:31 | 개인적 취향의 단어장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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