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드라마의 위험성

역사드라마의 위험성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바로 이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방송국에서 방영되는 역사드라마가 안고 있는 가장 치명적인 사상적 문제점이 이 기사를 통해 드러난다.
그리고 그 치명적인 문제점이라는 것이 기실 우리가 향유하고 있는 여러 매체나 작품에서도 엿보인다는 것을 생각하면 입맛이 씁쓸해진다.

대부분의 드라마가 현대의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은 역사를 해석하는 입장에서 뭐 인정할 수도 있을 법하지만, 정말 민주정치를 표방하는 사회에서 그 정치의 대표자를 국왕과 동치시킨다는 건 사실 말이 안된다고 생각해왔다.
이는 드라마뿐만 아니라 만평 등을 통해서도 노무현의 코드 인사를 '왕의 남자'라고 한다든지 대통령을 '왕'으로 표현한 부분에서 잘 드러난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런 의식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은 우리나라에 국민이 주인 되는 정신과 의식이 자리잡도록 하는데 상당한 방해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 물론 풍자적이고 은유적인 부분이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겠지만)

최근의 역사드라마(주몽이나 태왕사신기 등)는 적을 베고 영토를 확장하는 소위 영웅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옛 영토의 수복' 내지는 '옛 영광의 재현'을 내걸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애초의 옛 영광이라고 하는 것은 과연 피흘리지 않고 평화적으로, 당위성 있게 주어진 것이란 말인가. 이에 대해서는 모두가 침묵하고 있다.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 속에서의 착한 영웅이 나쁜 악당들을 물리치면서 이런 저런 기물들을 때려부수고 악의 무리들을 가차없이 베어버리는 장면을, 우리는 그런 것들을 보면서 열광하며 자라왔다. 이제 우리는 모든 것이 선과 악으로 분명히 나누어지지 않음도 알고 있으며, 완전한 선과 완전한 악도 없음을 알아야 하게 되었지만 아직도 마음 속에는 지고의 가치를 위해 인간의 생명과 개인의 재산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국적 마인드가 여전히 자리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그리고 고구려의 광대한 영토와 웅대한 기상을 보고 감탄하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찌질해 보이는 신라를 얕보기도 하지만, 신라도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고구려의 주변에 있던 적 국가들의 갑절은 되는 수의 소국들과 목숨을 건 싸움을 벌여야 했다. 수도가 포위된 적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신라는 모든 악조건을 견뎌내고 마침내 삼국정립의 상황에 우뚝 설 수 있었다. 물론, 고구려보다 신라가 더 위대하다든지 이런 말을 하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은 약간의 선입견 속에서 역사를 관조하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 뿐이고, 온전히 신라의 역사를 다룬 사극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이를 방증해주는 게 아닐까 하고 함부로 말해보는 것이다.

역사드라마는 드라마로서 즐기면 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연극 등의 예술작품을 자신들의 사상을 홍보, 전달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 꽤나 효율적임을 깨달았다는 점에서 본다면, 결코 그 위험성을 간과할 수는 없을 것 같다.

by 耿君 | 2007/09/28 08:52 | 글 모음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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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똥사내 at 2007/09/28 09:30
서라벌 근교에 사는 지로서는
뭐 어차피 고구려도 예전에는 적국이었겠군 이라는 느낌이라
고구려에 집착하는 꼴을 보고 있으면 그냥 짜증이
특히나 지난 번에 백두산 문제도 그렇고
다들 왜 다른 국가 영토 가지고 성질을 내는 거여
Commented by 耿君 at 2007/09/28 23:17
사실 백두산은 정치적인 이유에서 성질낼 필요가 있는 듯합니다만 ㅋㅋ
Commented by 解明 at 2007/10/02 21:16
히틀러가 바그너의 오페라를 통해 정치적 선전을 했었는데, 하물며 드라마라는 대중적인 장르가 갖고 있는 파급 효과는 어떻겠습니까? 하지만 '그냥 드라마(또는 사극)일 뿐인데 너무 민감한 것 아니냐는 말을 들을 때면 안타까움이 앞섭니다.
Commented by 耿君 at 2007/10/02 23:20
예 그러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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